사막에서 벌목장에서 시인은 선언한다 ‘나는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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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인 곽효환(43·사진)씨가 두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집』(문학과지성사)을 냈다. 2006년 첫 시집 『인디오 여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여행지, 이국(異國)에서 쓴 시가 많다. 시인도 전략적 선택을 하고, 차별화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곽씨가 고른 블루 오션은 말하자면 외국이고 낯선 문화다.

곽씨의 차별화는 소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인의 숫자만큼 다양한 시론(詩論)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시집 뒷표지에서 ‘“나는 다르다”는 선언에서 시는 출발한다’고 밝힌다. ‘나와 세계, 나와 시대와의 불화와 화해, 단절과 회통을 내 몸으로, 내 눈으로, 내 목소리로 부딪치고 느끼고, 보고, 소리 내어 말하려는 열망의 발화’가 자신의 시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촌스럽다, 이런 선언. ‘나의 길을 가련다’ 식의 자주화 선언은 시 쓰기의 기본 전제다. 자신만의 출발선을 확인하고픈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진솔하다. 또 쉽게 읽힌다.

60여 편의 시 중 ‘사막에 피는 꽃’같은 게 우선 눈에 밟힌다. ‘등 위에 커다란 두 개의 봉우리를 숙명처럼 짊어진’ 채 ‘순결해서 슬픔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망울을 한 낙타는 고통스러운 사막 길을 지나다 ‘낙타자(駱駝刺)’, 즉 낙타가시초를 씹는다. 낙타의 입과 내장은 어떻게 되겠는가. ‘온몸에 사나운 가시를 두른 날카로움을 핥으면/팥 알갱이만 한 작은 꽃망울 더욱 붉게 물들고/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꼭꼭 씹고 짓이기다가/차마 벌어지지 않는 슬픔의 목구멍을 열어/너무도 아픈 사막의 상처를 삼키면/새파란 가시는 예리하게 식도를 긁고 위를 파헤쳐/마침내 붉은 물/내장 가득하다’. 낙타가 경험하는 극한의 고통, 실은 인생의 고뇌로도 읽힌다.

‘벌목장에서’는 깔끔하고 간결하다. ‘톱날이 쓸고 간 그루터기 위로/다시 생명이 움트고/마침내 붉은 꽃 한송이 피었다/쓰러진 상처를 딛고 핀 희망/죽음을 딛고 일어선/그 굵고 선명한 눈물’. 낮고 차분하게, 하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로 곽씨는 ‘지도에 없는’ 새 집을 짓는 중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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