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족쇄’ 풀어준 이광재 … 대법 ‘마지막 관문’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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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일 지방자치법의 ‘지방자치단체장 직무 정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광재(45) 강원도지사가 직무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2일 지방자치법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했다. 취임식을 가진 지 63일 만이다. 강원도청 도지사 집무실로 돌아온 이 지사가 자리에 앉아 보라는 주위의 권유에 계면쩍은 듯 웃고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지사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남겨 두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 재판부는 이날 이 지사가 낸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지방자치법 111조1항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등을 위반해 청구인에게 보장된 공무담임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2011년 12월 31일까지 이 법률을 개정하라”고 제시한 뒤 “이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법률 조항의 적용을 중지하라”고 덧붙였다. 이 지사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4만 달러를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지난해 4월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민주당 강원도지사로 당선됐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 선고되면서 직무가 정지됐다. 그러자 이 지사는 7월 헌법소원을 냈다.

이 지사의 헌법소원에 대한 평의 과정에서 재판관들은 위헌 여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위헌-헌법불합치 입장에 선 재판관들은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헌법 27조4항)가 있기 때문에 유죄임을 전제로 해 일체의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돼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지방자치법은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단체장에 대해 공무를 수행할 권리를 박탈하는 불이익을 주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맞서 합헌 의견을 편 재판관들은 “유죄 확정 전까지의 직무 정지는 필요최소한의 불이익에 해당하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이어 “비록 하급심이라도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했다면 해당 지자체장을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국회의원은 당선 이전뿐 아니라 당선된 뒤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도 확정 전까지는 직무를 수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평등권 위배”라는 재반박이 이어졌다. 결국 위헌 의견 5명에 헌법불합치 의견 1명의 합류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헌법불합치의 경우 즉시 법 조항이 무효화되는 위헌 결정과 달리 효력이 유지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헌재 측은 “이 지사의 경우 직접적인 기본권 침해를 당하고 있기 때문에 효력 정지가 합당하다”고 말했다. 특히 “선거 과정이나 당선 후의 범죄가 아니라 당선 전의 범죄 혐의로 직무정지를 시키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이 지사의 경우 당선 전 혐의가 문제됐다는 점이 ‘효력 즉시 중지’의 근거가 된 것이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에 결정 선고가 앞당겨진 것은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와 관련해 해외 실사단이 9월 말 방문할 예정이라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법원, 이르면 올해 말 선고할 듯=이광재 지사의 직무 정지가 풀렸지만 그에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이 남아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정치자금법에 따라 공무담임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돼 도지사 직을 잃게 된다. 형사재판의 경우 항소심 판결 후 상고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5~6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선고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대법원 3부에 배당돼 박시환 대법관이 주심을 맡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박 대법관은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창립 멤버이자 초대 회장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진보 성향의 의견을 제시해 왔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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