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기업에 손 벌린 정통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보통신부는 일을 잘하는 정부 부처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진대제 장관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장관직을 계속 맡고 있는 유일한 장관이기도 하다.

그런 정통부가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다가 낭패를 봤다.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28일이면 정통부가 과거 체신부에서 정보통신부로 이름을 바꾼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날이다. 10주년 생일을 맞이한 정통부는 축제 분위기다. 생일 축하연을 예년과 달리 거창하게 벌이기로 했다. 정통부는 전직 장.차관과 외국 대사, 기업체 대표 등 주요 인사 500여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10년간 이룬 성과물을 한 자리에 모은 전시회와 10년사 발간, 영상물 방영 등 대규모 행사 계획을 세웠다. 행사 규모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레 비용도 늘었다.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정통부는 총비용 2억2500만원 중 1억4500만원을 지원해줄 것을 삼성전자와 LG전자.KT.SK텔레콤에 요청했다. 설령 기업들이 지원을 하겠다고 해도 마땅히 거절했어야 할 주무부처가 오히려 기업에 손을 내민 것이다. 이는 '정부 행사로 민간에 폐를 끼치는 일이 절대 없도록 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이 지시는 지난해 9월 청와대 비서실과 산업자원부가 대통령이 참석하는 전시회에 들어가는 비용을 민간 업체에 요청했다가 물의가 빚어졌을 때 노 대통령이 내린 것이다. 불과 4개월 만에 유사한 일이 벌어진 것.

그러다 이런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정통부는 27일 행사 규모를 대폭 축소해 외부 협찬 없이 자체 비용만으로 행사를 치르기로 방침을 바꿨다.

정통부 관계자는 "주요 인사 500여명이 참석하는 만큼 기업들도 참여하면 홍보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IT(정보통신) 경기가 가라앉은 상황에서 분위기를 쇄신하려면 뭔가 이벤트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정부가 민간에 폐를 끼치는 일이 합리화될 순 없다. 만약 그런 사업이 필요하다면 국회 심의를 받아 정부 예산으로 하는 게 정도다.

이희성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