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전자투표가 남긴 '의원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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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국 의회에서는 각종 법안을 표결할 때 일일이 의원들의 이름을 부른다. 의원들은 이에 맞춰 찬성이나 반대를 직접 말한다.

이른바 호명 투표(Roll Call Voting) 방식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사안에 따라 일부 무기명 투표가 실시되긴 한다. 그러나 대부분 호명투표가 이뤄져 개별 의원의 투표 내용은 고스란히 회의록에 남게 된다. 호명 투표 과정은 C-SPAN 등의 방송사를 통해 하루 종일 미 전역에 중계된다.

의원들이 어떤 법안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는 선거운동에서 유권자들의 중요한 선택기준이 된다. 분야별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투표 행태를 점수화해 매년 발표하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이런 자료를 토대로 환경단체 등이 각 후보의 환경 관련 법안에 대한 투표 결과를 집중 홍보한다.

중앙일보가 국내 처음으로 17대 국회의원의 투표 성향을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회에 전자투표가 도입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9년 3월부터 실시된 이 제도 덕분에 개별 의원들의 표결 내용이 즉석에서 전광판을 통해 파악될 뿐 아니라 국회 회의록에 담겨 보존된다. 이전에는 무기명 기립투표가 일반적이어서 찬반 의원 명단은 속기록에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제도(전자투표)는 시행되고 있어도 표결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 의원들의 인식은 부족한 듯하다. 의원들의 투표행태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어서인지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투표 불참률이 미국 의원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본지의 분석 결과 의원들이 어떤 법안에 대해 어떻게 투표를 했는지, 투표 내용을 기준으로 어떤 의원들끼리 비슷한 성향을 가졌는지, 또 마지막 의사 결정에 불참한 의원들은 누군지 등이 드러나자 독자들의 호응이 뜨거웠다.

"학생들의 성적표를 부모에게 보내듯 국회의원도 중간.기말평가 등을 해서 국민에게 알려달라. 다음 선거 때 참고하겠다"거나 "일반 노동자에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적용되는데 왜 투표에 불참한 국회의원들은 예외냐"라는 반응이 많았다. 앞으론 본회의장 의석에 부착된 전자투표기를 어떻게 누르느냐에 따라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의원들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성탁 탐사기획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