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판 시비 말고 광화문을 제대로 복원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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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화재청은 경복궁 1차 복원사업의 하나로 광화문의 현판을 정조 글씨로 집자해 바꿀 예정이다. 1968년 광화문을 재건하면서 문루에 내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한글 현판이 경복궁의 공간 성격에 맞지 않고 원래 한자 현판과 다르게 글씨 방향도 거꾸로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이 조선왕조 정궁의 정문 현판으로 적절치 않다고 본다. 광화문을 복원한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하나밖에는 그의 글씨가 내걸릴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현판을 지금 왜 갈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이 안 간다. 이미 35년 이상 그 자리에 그 글씨가 있었다. 그것도 역사다. 특히 이러한 현판 바꾸기 사업이 현 정권의 정치적 속셈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지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일 수교 문서의 공개, 육영수 여사 살해범 문건 공개, 광화문 현판 바꾸기 등 이 시점에 박정희와 관련된 일만 왜 동시다발로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는 문화재청이 이러한 의심을 받아가며 현판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정말로 역사를 소중히 생각한다면 철근.시멘트로 복원한 광화문을 고증에 따라 목조로 복원한 뒤 새 현판을 거는 것이 옳은 순서다. 지금의 광화문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여서 석축 기단에 3궐의 홍예를 만들었던 본디 모습과 거리가 멀다. 지금의 광화문 옆에 놓여있는 해치 또한 제자리가 아니다. 이런 것은 그대로 놔두고 박정희 현판의 글씨만 바꾸겠다는 발상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이미 경복궁 복원 사업이 1990년부터 20년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2009년에는 태원전과 광화문 권역 공사가 끝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고종 당시의 경복궁 40% 정도가 옛 모습을 되찾게 된다. 광화문 현판은 서화가 정학교가 쓴 한자체로 이미 건물과 함께 불타버렸다. 지금 바꾸고자 하는 현판도 본래 것이 아닌 이상 글씨체 바꾸기는 미봉책일 뿐이다. 광화문 복원에 천문학적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복원을 먼저 한 뒤 현판 글씨체를 논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