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근처 건축물 높이 제한 '앙각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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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다 천호대교 부근에 이르면 한강변을 따라 지붕선이 비스듬한 아파트 3개동이 눈에 들어온다. 네모반듯한 건물들과는 다른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이 곳은 강동구 풍납동 시티극동아파트.

대부분 '한강변과 어우러진 특이한 디자인이려니…' 생각하지만 인근 풍납토성 때문에 이렇게 사선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에 따르면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들어서는 건축물의 높이는 경계 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건축이 허용되는 앙각(仰角)이 27도 이내로 제한돼 있다.

<그래픽참조>

따라서 1997년 저층의 연립주택과 단층주택을 재개발해 아파트를 세울 당시 이 규정에 맞춰 최대한 세대수를 확보하려다 보니 이런 특이한 모양의 건물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문화재 주변의 사선(斜線) 건물=문화재가 많이 모여 있는 종로구나 중구 등에서 지붕이 비스듬한 건물이 많다.

종로구의 많은 빌딩은 문화재의 앙각 제한에 걸려 끝이 깎여나간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 탑골공원 옆에서 공사가 한창인 한 주상복합 아파트도 설계도상으로 한쪽 끝이 비스듬한 모습이다. 중구 태평로의 삼성생명빌딩(구 동방플라자)도 국보 1호인 남대문 주변에서 꽤 떨어져 있는 편이지만 역시 이 사선 제한을 받아 2단으로 설계됐다.

문화재 주변이 아니더라도 건축법상 도로사선 제한을 받는 곳에 이런 비스듬한 모양으로 들어선 건물들도 많다. 종로2가 국일관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행법상 최고 높이가 정해지지 않은 도로변에서 건축물의 높이는 앞에 있는 도로 반대편까지 거리의 1.5배를 초과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역시 앙각제한과 마찬가지로 도로 반대편에서부터 건물 정면 꼭대기까지 선을 그었을 때 선 안쪽까지는 건물을 높일 수 있게 돼 있다. 대로변에서 한 블록 떨어진 좁은 골목길에 있는 국일관도 이 제한 안에서 건축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다 보니 기울어진 모습이 됐다.

◇일선 구청의 제도개선 요구=현재 서울시내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은 총 4천7백80필지 1백21만여평. 국가 지정문화재가 있는 경우 주변 1백m까지, 시 지정문화재의 경우는 50m까지 앙각 제한을 받고 있다.

시내 국가지정문화재의 32%, 서울시 지정문화재의 25%를 가지고 있는 종로구에서는 제도 개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도심의 낡은 건물들이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데다 청계천이 복원되면 수표교·광통교 주변 등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종로구 이노근(李老根)부구청장은 "행정지도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사선 제한 안으로 최대한 고층을 확보하려는 건물주들을 막을 수 없다"며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종로 중심가에는 꼭대기 부분이 비스듬한 기형적인 스카이라인이 형성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종로구는 16일 열린 시 정례회의에서 앙각 제한을 피해 삼각형 모양으로 쌓아올리는 뒷부분 중 절반을 잘라내 깎여나간 앞부분에 보충하는 것까지만을 허용하자고 제안했다. 사선으로 지어진 건물은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고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 구조안전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하면 용적률·건폐율 면에서 차이가 없으면서도 정상적인 모습으로 지을 수 있다는 게 구의 주장이다.

서울역사문화연구소 박경용 소장은 "현재의 앙각 제도는 문화재의 경관을 보호한다는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도심의 스카이라인만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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