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 혁신기구 설치" 개혁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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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이 26일 최고위원단의 일괄 사퇴 소동까지 겪으며 대선 패배 뒤 진로 모색에 나섰다. 이날 천안 연수원에서 열린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다.

연찬회는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하고 2개월쯤 뒤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구성키로 결정했다.

한때 현 지도부, 특히 최고위원들의 사퇴 시점을 두고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서청원(徐淸源)대표는 인사말에서 "시원스럽게 물러나는 게 손쉬운 일이나 당을 수습하는 것 또한 책무여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때만 해도 徐대표와 김진재(金鎭載)·박희태(朴熺太)·하순봉(河舜鳳)·이상득(李相得)최고위원은 전당대회 때까지 당무를 맡되 다음 전당대회 때 불출마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토론 과정에서 "최고위원들이 즉각 사퇴해 쇄신과 개혁 의지를 보여주자"(權五乙·安泳根·元喜龍), "비상대책기구를 만들고 당을 안정시킨 뒤 사퇴하는 게 적절하다"(金容甲)는 의견이 맞섰다.

그러자 徐대표는 저녁회의 때 "오늘 저를 포함한 최고위원은 사퇴한다. 이로써 패배의 책임 문제를 접도록 하자"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선·후배를 공격하는 정치를 안 해왔다. 이러쿵 저러쿵 하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경선에도 출마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최고위원들과 퇴장했다. 그러자 일부가 "무책임하다" "떠나면 그만이냐"고 만류했다.

안영근·원희룡 의원이 주장을 굽히지 않았으나 백승홍(白承弘)·김기춘(金淇春)·박재욱(朴在旭)의원 등 대다수가 "지금 그만두면 당이 깨진다"고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고함이 터지는 등 격해졌다.

마침내 徐대표가 다시 나와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 길어야 두달인데 무슨 힘을 받아서 하겠느냐. 나는 싫다. 이의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權·元·安의원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이의 있느냐"고 물었다. 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사퇴 의사 철회를 추인했다. 진통이 있었지만 결국은 徐대표 뜻대로 된 모양새다.

◇당 개혁안=안상수 의원은 "중앙당을 대폭 축소해 원내 정당화하자. 당 관리 차원에서 대표만 존속시키자"고 했다. 원희룡 의원도 "원내 중심으로 정책 정당화하고 최고위원제 폐지도 검토하자. 또 대의원과 선거인단 구성에 국민 참여를 보장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김용균(金容鈞)의원은 "급진적 개혁은 공동체를 파괴한다"며 반대했다. 이방호(李方鎬)의원도 "영·미식 원내 정당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외 위원장들도 원내 정당화에 반대했다.

비상대책기구에 대해서도 설치에 동의했으나 업무 범위·규모 등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대선 패인=김홍신(金洪信)의원은 "기득권을 고집하고 합리적 정책정당의 모습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며 "반(反)DJ 정서에도 안주했다"고 진단했다.

김영춘(金榮春)의원은 "대세론에 안주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김형오(金炯旿)의원은 "후보 경선 때 인터넷 투표를 도입하지 않은 게 인터넷 세대를 배제하게 된 시발점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고, 박진(朴振)의원은 "디지털 정당화에 나서야 한다"며 자신의 매뉴얼을 의원들에게 제공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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