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에 친미정권 수립땐 美 주도로 석유 증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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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이라크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면 국제 석유시장은 미국의 주도로 재편될 것이다. "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RIIA)는 이달 발간한 '이라크 석유의 미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라크가 미국의 통제 아래 들어갈 경우 이라크의 산유량은 세계 전체 산유량의 6∼7%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지닌 이라크 석유의 향방과 관련, ▶미국이 바라는 '유에스토피아(미국의 낙원)'▶이라크 스스로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메이드 인 이라크'▶대혼란 상황 등 세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첫째 시나리오대로 '유에스토피아'가 되면 유엔은 이라크에 대한 석유 금수조치를 신속히 해제하고, 미국의 대형 정유사들이 앞다퉈 이라크에 투자하면서 이라크의 산유량은 2005∼2006년 하루 4백만배럴, 2010년에는 6백만배럴까지 급증할 것으로 보고서는 내다봤다. RIIA는 미국이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고 나아가 리비아·이란에 대한 제재까지 해제한다면 현행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도의 감산체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메이드 인 이라크' 시나리오는 이라크 정권 내부의 쿠데타가 성공해 미국에 독립적인 '포스트 사담 후세인' 정권이 들어서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라크의 신정권도 미국과 유엔의 무장해제 요구를 결국 수용할 것이며, 석유 수입을 비(非)군사적 용도로 사용한다는 전제 아래 이라크에 대한 제재도 천천히 풀릴 것으로 보고서는 전망했다. 따라서 이 경우도 2010년 생산량이 하루 5백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세번째 시나리오인 '대혼란 상황'에선 이라크전이 장기화하고 미국이 세운 정권이 이라크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면서 이라크 내부의 혼란이 계속된다. 보고서는 "최악의 경우 이라크의 석유 생산 자체가 중단돼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세계경제가 3∼5년 간 불황에 빠지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소는 '유에스토피아'가 될 경우 엑손모빌 등 미국과 영국의 대형 정유사들이 가장 큰 이익을 얻고, 이미 이라크와 투자협정을 하고 있던 나라들은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지분에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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