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와 대화 원해 핵 카드는 협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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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대치국면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조지아 대학 석좌교수이며 국제문제연구센터(GLOBIS) 소장인 박한식(朴漢植)교수는 1981년 이후 30여차례 북한을 방문했고 94년 북핵 위기의 고비를 넘기는 데 기여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에 막후 역할을 했다. 본사 길정우 논설위원이 북·미 양측의 생각과 대응책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북한이 사용 후 핵연료봉과 핵 재처리 시설의 감시장치 및 봉인 해제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의도입니까.

"북한이 느끼는 안보 위협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큽니다. 경제사정도 매우 나쁩니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에게 일본인 납치를 인정하는 바람에 조총련이 설 땅이 없어졌고 대북 송금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이 와중에 중유 공급까지 중단됐으니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서 강경책을 쓴 것 같습니다. 미국이 이라크 문제로 북한에 대한 무력공격을 할 여유가 없다는 판단도 큰 위험부담 없이 미국을 압박하도록 만든 배경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어디까지 갈까요.

"미국이 대화에 응하지 않고 북측을 밀어붙인다면 핵시설 재가동의 가능성은 커집니다. 북한엔 주체사상, 자주권 확보 등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정통성 확보가 체제존립의 기반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 없이 외부 압력에 의해 거둬들인다면 정통성이 와해되는 셈이니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게다가 주민들에게까지 공개된 사안이라 더욱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시설 재가동의 시한을 못박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의 주된 관심은 여전히 대미 협상입니다."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요.

"'말'은 강하게 하고 있지만 미국이 바로 군사적 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 테러리스트와 무관한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해 국제적 지지를 얻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결국 북·미 간 협상으로 풀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내년 1월 말, 2월께로 예상되는 이라크 공격에서 희생이 예상밖으로 커져 국내여론이 악화되면 대북공격을 심각하게 검토할 것입니다."

-어떤 해결책이 있습니까.

"한반도에서 전쟁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북·미 간 대치국면에선 다자간 창구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한국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중요한 일원입니다. KEDO를 되살려 중유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핵동결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북·미 불가침 조약이나 한국이 포함된 다자간 평화협정을 맺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북·미 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미국이 응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에 대한 분명한 답을 들어야 합니다. 답변에는 남북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주한미군의 평화유지군으로의 위상 변화 가능성에 대한 입장도 포함돼야 합니다. 또 일본·EU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도 필요합니다. 우리 단독의 중재가 쉽지 않다면 일본·중국·러시아 등을 참여시켜 정부 차원의 컨소시엄을 만들어야 합니다. 즉 안보문제를 북·미 차원을 떠나 지역 내 다자간 안보체제로 옮겨가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길정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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