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義를 벤 '野人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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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주의 『자객열전』은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자객 8명에 관한 소설이다. 8명의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을 이루지는 않고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밑바탕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따왔다.

국어사전 풀이로 '칼로 남을 찔러 죽이는'킬러인 자객을 역사의 무대에 당당히 올린 사람이 바로 사마천이었다. 그는 '사기'의 '자객열전'편을 쓰며 인물 선정에 신중을 가했다. 바로 의로움과 보은의 정신이었다. 자객의 (살인)행위보다는 그 행위의 목적과 대의명분에 무게 중심을 둔 것이다.

작가는 사마천이 선정한 다섯 명의 자객에 나름대로 선정한 세 명의 자객을 더해 이 소설을 썼다. 사마천의 다섯 명은 협객의 시조인 조말과 전제·예양·섭정·형가 등이며 작가가 선정한 자객은 발제·요이·미간척 등이다. 이들은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인물들로 작가는 "그 이후의 자객들이 다소 변질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춘추전국시대에는 치열한 의협 정신과 행동 철학이 가장 잘 녹아나 있는 때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선 협객의 시조로 손꼽히는 조말은 '불의(不義)를 보고 피하는 것은 칼을 지닌 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다'는 신념의 소유자. 무공은 뛰어나지만 권력에는 욕심이 없는 야인이다. 전쟁에서의 잇따른 패배로 불명예를 얻은 그는 칼 한자루에 의지해 나라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는 불굴의 용기와 명예 되찾기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준 인물이다.

자신을 알아준 주인을 위해 자객이 된 예양은 보은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의리의 소유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갚는 게 자객의 기본 자격 조건임을 생생히 알려준다. 특히 몇 번의 거사 실패 이후 남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눈썹을 다 뽑고 숯을 먹어 목소리까지 바꾸는 집요함은 한 인간의 결기가 어떤 행동도 두려워하지 않게 됨을 알려준다.

사마천이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자객들, 즉 이미 검증된 인물을 주요 등장인물로 삼기에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한 박자 먹고 들어가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특히 무료한 겨울밤 소파에 누워 읽어가기에 큰 무리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단점은 지적돼야 할 사항이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를 토대로 인물 형상화에 픽션을 가미했다고는 하나 자객 한 명 한 명의 인간적 고뇌 등이 현대적 모습으로 형상화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역사적 상황과 조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주인공 자객들의 입장에 선 서술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자객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서늘함·외로움·고독함·의로움 등이 문체상에 잘 구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의고투 문장인데다 때로 동양 고전을 그냥 번역해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도 간혹 발견된다.

저자 유재주씨는 1985년부터 검도를 배우기 시작해 현재 검도 4단이며 사회인 검도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적도 있다. 그는 84년 단편 '겨울비'로 『소설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북국의 신화』 『검』등을 펴냈다.

우상균 기자

hothe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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