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감원은 언제까지 뒷북만 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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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감독원이 그제 국민은행의 강정원 전 행장 등 88명을 징계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외국 은행의 지분을 인수하고 해외 채권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1조1000억원의 손실을 끼친 책임을 물은 것이다. 금감원은 또 환헤지 상품인 키코(KIKO)를 판 9개 은행도 문책했다. 거래 기업들에 위험한 파생(派生)상품을 지나치게 많이 팔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강도 높은 제재에 대해 “은행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법규 위반이나 금융시장 교란 행위를 단속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석연치 않은 배경과 뒷북치기가 반복되는 점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3명의 최고경영자가 연이어 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하지만 이들 모두 다른 문제들로 인해 ‘괘씸죄’에 걸린 뒤에야 금감원이 제재에 나선 게 공통점이다. ‘표적 징계’라는 구설이 따라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키코 사건 역시 수조원의 환차손(換差損)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나서야 징계가 이뤄졌다.

금감원은 외환위기 이후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거듭 다짐해 왔다. 사전에 감시·감독을 강화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대형 금융사고가 터진 뒤에야 제재에 나서는 관행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키코를 무위험·무수수료 상품으로 홍보하며 판매에 열을 올릴 때 손을 놓고 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커버드본드(담보가 있는 채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은 금감원과 사전 협의까지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금융감독의 방향을 거시적(巨視的) 건전성 확보로 틀고 있다.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사전 경보 기능도 강화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금감원은 여전히 개별 금융회사 단속이 위주다. 미시적(微視的) 감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나 한국은행과의 협조는커녕 신경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금융감독 권한을 독차지한 채 뒷북치기만 해댄다면 금감원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금융감독 권한의 적절한 분산을 놓고 우리 사회의 고민도 깊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