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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해소 메커니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드디어 16대 대선이 막을 내렸다. 간발의 차이이긴 하지만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이 같은 결과는 국민의 심판이기 때문에 승자는 앞으로 5년간 한국을 짊어질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된다. 물론 패자로선 아쉽기도 하겠지만 국민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이 마지막까지 그 승부를 가릴 수 없는 일대 접전 양상으로 간 것은 한국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는 점을 반영한다. 사실 한나라당으로서는 김대중(金大中) 정권이 저지른 비리와 부정부패, 편파 인사 등의 과오로 이번 대선이 식은죽 먹기라고 할 만큼 판세가 좋았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국민경선이라는 획기적 절차를 거쳐 대선 후보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당의 내분으로 당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고, 종반부까지는 정당 차원의 캠페인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접전이 연출된 것은 한국사회의 거대한 변화 때문이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변화를 담아낼 수 있는 후보들 주위에 결집했고, 이것이 접전 양상을 연출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1990년대 들어 탈냉전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세계화·정보화·민주화는 한국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화·정보화·민주화라는 거대한 역사적 흐름은 한국사회를 그 바탕에서부터 재구조화했다. 세계경제 속에 통합된 한국시장, 정보사회의 도래, 끊임없는 개혁의 욕구는 정치영역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게 됐다.

총유권자의 절반에 이르는 이삼십대는 이런 변화에 걸맞은 새로움을 갈구하게 됐고,구태의연한 정치는 설 자리를 잃었다. 이번 대선의 주인공은 바로 이 같은 변화를 희망하는 젊은층들이었으며, 이들의 세력화는 선거의 성격도 지역 대결에서 세대 대결로 바꿔놓았다.

이번 대선이 돈·조직·대중동원으로 얼룩졌던 역대 대선과 판이하게 인터넷·네티즌·미디어선거 양상으로 전개된 바탕에도 바로 이런 변화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점이 바로 한국사회가 변했다는 증거이자 시대가 변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선거제도와 시민의식의 승리라고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변화는 불가피하게 사회갈등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보면 사회변화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며, 그에 따른 갈등도 해소의 메커니즘만 있다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갈등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금기시할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대선을 통해 표출된 한국사회의 균열은 그 양상이 심각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갈등의 정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이 선다. 지역균열이 약화되는 조짐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봉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갈등이 고착화돼 가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대선 막바지에 불거진 북핵 관련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분단으로 인한 남남 균열 역시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이만저만한 장애물이 아님을 다시 보여주었다. 세계화의 중심국인 미국에 대한 인식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어 새로운 갈등을 가져올 중대한 사안으로 등장했다.

사실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는 분권과 분산 문제였다. 한국은 과도한 중앙집중화로 인해 지방과 서울 간의 균열이 극에 달해 있다. 분권과 분산 역시 세계화와 함께 세계적인 시대적 흐름의 일부이지만 행정수도 이전과 서울 공동화라는 이분법으로 변질돼 버려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남겼다.

이제 새 리더십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화를 발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도전을 맞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는 바로 사회변화가 야기한 이 같은 균열들을 해소해야 할 책무가 부여됐다. 대부분의 선거에서 그러하듯 이번 선거결과도 당선자가 내놓은 모든 정책에 대한 지지로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국민은 균열을 해소할 과제를 당선자에게 부여한 것이다. 결국 방법은 정치에 있다. 시민의 변화 요구가 제대로 반영된 정치개혁을 통해서만 갈라진 세대·계층·지역을 통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과 통합은 대립적이거나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하나의 과정이다. 이 같은 개혁과 통합이야말로 당선자에게 요구되는 역사적 과제이자 새로운 리더십을 형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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