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확실히 변했는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대규모 촛불시위와 반미 항의집회를 바라보는 미국의 지한파(知韓派)들은 착잡하고 의외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나의 교통사고가, 그것도 음주운전이나 고의적인 행위가 아닌 교통참사에 우리 국민이 이처럼 흥분하는 것을 이곳 워싱턴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만큼이나 요사이 우리 국민들도 미국이 얼마나 변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첫째, 미국은 지금 새로운 전쟁체제에 들어가 있다. 지난해 9·11 사태는 냉전체제 종식 이후 10여년간 누려온 미국의 태평성대가 이제는 새로운 테러전체제로 바뀌었음을 알려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50여년 간의 냉전체제가 동·서 간의 이념적 대결이었다면 새 테러전체제는 빈곤과 무지 속에서 광신도적인 종교이념으로 무장된 후진국 테러리스트들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선진국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자살공격에 대한 방어체제다. 미국은 특히 적개심에 불타는 자살단들이 대량 살상무기를 갖게 된다면 냉전 때보다 더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보고 50여년 전 냉전 초기에 국방부(펜타곤)를 설립한 이래 가장 대규모적인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원 17만명의 거대한 국토안보부를 설립했다.

둘째, 테러전체제 하에서 미국의 외교방향은 냉전체제 때와 다른 새로운 동맹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보다 미국의 대테러 전에 적극 동조하는 러시아·중국·예멘·우즈베키스탄 등 옛날 냉전시절의 적대국들과 새로운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와는 인사말도 제대로 않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중국의 장쩌민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부부동반으로 텍사스의 대통령 농장으로 초청해 환대해 주었다. 아무리 옛날 냉전시절 친근했던 국가들이라도 대테러전에 비협조적이면 달갑잖게 취급당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테러전체제에 상응한 적극적인 군사·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10여년 전 냉전체제가 무너지자 세계 유일한 수퍼 파워가 된 미국은 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지에서 소련과 경쟁하기 위해 펼쳐온 환심 외교정책을 지양하고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는 소극적 대외정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90년대의 미국 공화당의 신고립주의와 민주당의 보호무역주의는 바로 이러한 탈냉전시기 미국의 소극적인 외교정책으로의 전환을 상징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자기 아버지가 대사로 가있는 중국을 한번 방문한 것 외에는 해외여행을 안했을 정도로 국제문제에 무관심했던 부시가 2년 전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탈 냉전기 미국인의 점증하는 신고립주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테러전체제 하에서 미국은 냉전시기 때보다 더 강경한 군사·외교정책을 채택했다. 테러와의 전쟁 명분으로 세계 어느 국가 어느 지역이든 미국을 위협하면 핵무기까지 포함한 모든 첨단무기를 동원해 선제공격을 서슴지 않겠다고 부시 대통령은 대내외에 공식 선언했다.

이처럼 달라져버린 미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우리 국익에 가장 합당할까?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과 6·25 남침 극복 등 지난 반세기 동안에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맹방이었다. 또 미국의 거대한 시장·기술·자본은 우리 경제의 현대화에 어느 나라보다 더 큰 공헌을 하였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이 그동안 우리에게 보여준 우호적 태도는 꼭 한국과 한국인이 미국에 특별히 예쁘게 보여서가 아니라 긴밀한 한·미관계가 미국의 국익에 합당하였기 때문이었다.

동·서 간의 냉전체제 하에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소련에 의한 공산권의 극동아시아 팽창을 저지하는 전초지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대테러전에 미국의 새로운 맹방으로 등장하게 된 현실에서 미국이 한국을 옛날처럼 피흘려가며 또 방어해 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졌다. 우리의 촛불시위가 반미 데모와 미군 철수요구로 비화된다면 미군의 한반도 철수도 충분히 가능해졌다고 본다. 동서 간의 냉전체제 때와는 달리 테러전체제 하에서의 한국의 안보는 미국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현실을 우리는 이제 냉정하게 저울질해 보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