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관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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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부터 꼭 5년 전인 1997년 12월 19일, 필자는 모 신문의 청탁을 받아 그 전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에게 보내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 글 가운데서 몇 구절을 여기에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국민 대통합의 영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번 선거의 투표성향은 기존의 지역구도 이외에 세대 간 편중성이 뚜렷해 보인다. 경쟁후보의 지지세력 간에 감정적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따라서 선거후유증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이와 함께 교과서 같은 주문이지만 민주주의는 절차의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낙선자들은 국가가 당면한 위기를 거국적 단합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 당선자와 함께 지혜를 모아 협력하는 자세가 절실히 요망된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열렬히 지지했던 후보가 비록 낙선했다 할지라도, 그리고 득표의 차이가 그야말로 박빙이었다 할지라도 결과에 승복하고 나라의 역경을 이겨내는 대열에 동참하는 자기억제와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위대한 힘이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역대정권의 실패가 대부분 인사정책의 잘못 때문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정권창출을 전리품쯤으로 인식하고 지지세력을 중용하거나 섣부른 지역·세력안배를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됐는지를 교훈으로 삼아야 옳을 것이다. 지역과 세력 간 안배를 배제하고 능력 위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파격이 요청된다. 필요하다면 반대당의 인재도 맞아들이는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민 대단합의 영도력이 빛날 것이다.

金당선자는 준비된 후보, 경제를 잘 아는 후보임을 강조해 왔다. 아마도 유권자들은 그 말을 믿고 선택했음직하다. 그러나 국민들은 무식한 대통령을 결코 원하지 않지만 또한 자신의 유식함만을 자만하는 대통령도 경계한다. 왜냐하면 자만이 독선을 낳기 때문이다." 5년 전에 썼던 글을 이렇게 길게 옮긴 까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위와 같은 주문들이 5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볼 때 헛된 말이 돼버렸다는 부끄러움 때문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같은 요망이 16대 대통령선거 당선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표결과가 어떻든 이번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세대 간 대립의 골이 더 깊어졌고, 특히 사이버공간에서 난무한 말의 폭력은 경쟁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적대감마저 갖게 만든 측면이 있다. 만약 이 같은 선거후유증이 치유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분열의 비극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예방하고 국민대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은 당선자의 영도력에 있다. 그 영도력은 무엇보다도 인사정책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근본은 관용의 정신에서 시작된다. 5년 전 김대중 당선자에게 했던 모든 주문을 관통하는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관용'이었다. 그것은 16대 대통령선거 당선자에게 드리는 요망에서도 마찬가지다. 관용 없이 탕평책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관용은 대통령 당선자에게만 요구할 미덕이 아니다. 온국민이 갖추고 실행해야 할 지상의 덕목이다.

자기 주장만 옳고 자기와 다른 의견을 매도하는 데 열중하는 사회, 자기 세력만 정당성을 지니고 반대 세력은 타도의 대상으로만 몰아가는 풍토, 그래서 공론의 장, 사상의 자유시장이 설 수 없을 때 전체주의가 고개를 들게 된다. 또한 대중영합주의도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관용의 탈을 쓸 뿐이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자신처럼 존중하고 인정하며,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도 귀 기울여 합당하면 승복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건전한 사회,민주사회의 진정한 모습일 것이다. 이 엄혹한 현실 앞에 무슨 잠꼬대를 늘어놓느냐는 질책도 있을 것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관용의 미덕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해의 화두를 '관용'으로 삼자고 감히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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