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 규제완화 국민건강 고려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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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단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홀히 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공기의 소중함이다.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은 가리지만 숨쉬는 공기는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소변으로 빠져나가는 음식과 달리 폐로 들어온 공기는 허파꽈리에서 혈액에 섞여 이내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공기가 음식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이다.

최근 영국의 의학잡지 랜시트엔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홍콩의 강력한 대기오염 방지정책이 국민의 수명에 끼친 홍콩대 연구진의 대규모 역학조사다.

홍콩 정부는 1990년 7월 홍콩 내 모든 발전소와 자동차에 대해 무게당 유황 함량을 0.5% 이내로 줄인 저유황 연료의 사용을 의무화했다. 이 결과 불과 5년 만에 홍콩의 대기 중 유황이 45%나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홍콩 사람들은 어떤 건강 혜택을 누리고 있을까. 연구진은 심장병과 천식·암 등 주요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을 대기오염 전과 후를 비교해 조사했다. 다른 조건이 다 똑같다는 가정 아래 단지 저유황 연료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홍콩 사람들은 남자의 경우 매년 41일, 여성의 경우 매년 20일의 생명 연장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유황이 적은 맑은 공기 속에서 10년을 산다면 남성은 4백10일, 여성은 2백일이나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

경유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둘러싸고 최근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경유차 시장확대 압력에 환경부는 2005년부터 경유차의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대폭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경유차는 연비가 좋고 이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등 일부 대기오염 물질의 발생량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질소산화물은 6∼8배, 미세먼지는 1.5배 가량 더 배출한다.

앞서 언급한 대표적 대기오염 물질인 유황도 휘발유보다 2∼3배나 많다. 이 때문에 최근 환경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규제완화 조치를 대기오염 감소정책의 포기나 다름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단지 경제적 이유만으로 경유차 배출가스의 허용기준이 완화된다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게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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