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核 - 美軍 철수론 - 촛불시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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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군 무한궤도차량에 치여 숨진 여중생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오늘 전국 일원에서 벌어진다.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주도하는 시위에는 서울시청 앞 10만을 포함해 전국에서 30만명이 참가하는 것으로 예고돼 있다.

꽃다운 나이에 떠나간 여중생들에 대한 애도의 정이야 무슨 말로 이루 다할 수 있겠는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평화적 촛불시위가 있었기에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 관해 다시 한·미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고 있음도 중요한 변화다.

촛불시위가 유도한 긍정적 변화는 이 정도가 아니다. 부시 미 대통령은 어제 김대중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숨진 여중생들에게 깊은 애도와 유감의 뜻을 표했다. 또 재발방지를 위한 한국과의 긴밀한 협조 의사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만명 이상이 모인다는 오늘 추모시위에 대해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추모의 장(場)이 반미(反美)투쟁의 장으로 변질될까 우려되는 것이다. 실제 '미군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는 반미 구호가 내걸리는 등 분위기가 상당히 격앙된 상태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한총련도 범대위 구성원으로 돼 있다. 때문에 돌출행동으로 인한 불상사도 예견된다. 참여자 개개인의 자제와 질서유지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지금 나라 안팎에는 촛불시위가 자칫 빗나갈지도 모를 위태로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선박 나포에서 '핵시설 즉시 재가동''핵 감시장치 제거 요구'등으로 북핵 상황이 험악하게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일이 임박한 시점이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 침공의사가 없다는 사실과 함께 한·미간 공조의사를 金대통령에게 밝힘으로써 한·미간 협조체제가 복원되는 기미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은 미국 보수주의 쪽에서 일련의 시위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북핵을 경계하고 미군철수 반대를 주장하는 성명이 나오고 있다. 나라 안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만약 한쪽에선 반미를 외치고 또다른 한쪽에선 미군철수 반대를 외치는 소리가 높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다시금 혼란과 분열의 늪에 빠질 것이다. 오늘 밤 촛불시위가 결코 이런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장으로 이용돼선 안된다. 가버린 넋을 위로하고 미국에 대한 우리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자.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폭력과 혼란은 저지해야 한다. 있을지 모를 일부 불순세력의 책동은 서로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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