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에 된장·쌈장·초장… 창의성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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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나는 생선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의 생선 값이 만만치 않지만, 보다 싱싱하고 맛있는 생선을 직접 고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수산 시장을 자주 찾는다. 워낙 생선회를 좋아하다 보니 비즈니스 파트너나 지인들과 어울려 한국의 생선회 식당을 찾는 일도 적지 않다. 2년 전 한국 법인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돼 일본 본사에서 온 임직원들과 서울의 한 생선회집을 찾았을 때 일이다. 우리 일행은 한국 식당 주인이 가져온 생선회를 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생선회의 많은 양은 둘째치고, 식탁에 오른 갖가지 반찬들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처음엔 외국인이라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줄 알았지만 옆 테이블 손님들을 보니 크게 다를 게 없었다.솔직히 말해 우리 일행을 '압도했던'음식의 양에 비해 음식의 질은 일본과 다소 다른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먹었던 생선회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한국인들이 스케일이 크고 화끈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됐다.

한국인들이 생선회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것도 놀라웠다. 일본인들은 생선회를 고추냉이(와사비) 간장에만 찍어먹는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된장·쌈장·초장 등 다양한 장에 찍어 먹는다.

그뿐 아니다. 배추·상추·깻잎 등 여러가지 야채에 싸 생선회를 즐긴다.

다양한 방법으로 생선회를 즐기는 한국인들은 보다 더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한 것처럼 보였다. 한가지 아이템을 다양한 방법으로 진지하게 응용하고 활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느낀 한국의 가장 큰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접했던 한국 사람들은 개인별로 보면 창의적이고 응용력이 강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일에 대한 열정이 적지 않고 개성도 강하며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직에 속한 한국인들은 엄격한 상하 관계나 경직된 조직 문화 때문에 이런 장점들을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전통적인 유교 문화권의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국법인 설립 후 초창기에는 전체회의 시간에 직원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상사가 의견을 제시하면 별다른 이견 없이 업무를 진행시키곤 했다.

한국인의 저력을 파악한 나는 이러한 특성들을 깨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보다 자유롭게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가전제품과 멀티미디어가 결합되는 시대, 모바일과 IT가 결합되는 시대, 영역이 허물어지고 창의와 응용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한국에서 지난 2년간 느꼈던 한국인들의 스케일·다양성·응용력을 잘 발휘하면 한국은 새로운 시대의 경제 주도권을 가진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 이러한 창의력과 응용력이 개개인의 개성으로 그치지 않고 전체적인 조직 문화 내에서 흡수·발전된다면, 한국만의 독창적인 오리지널 브랜드와 제품들이 더 많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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