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선박 나포]北, 美 추적 알고도 수출 강행 흔적:北 계산된 전략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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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만일 미국이 우리의 것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선제공격의 개시로 간주하고 그에 단호하고도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로 대답할 것이다. "

북한은 지난 1일 관영 중앙통신(KCNA)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선박에 제재를 가할 경우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에 조선(북한)과 이란·이라크의 '무기 공급선'을 파괴하라는 비밀명령을 내렸다"며 "이것은 사실상 우리 공화국에 대한 공공연한 선전포고"라고 반발하는 입장 표명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예고했던 상황이 11일 현실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 측의 구체적 대응 행동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무엇보다 미사일을 수출하려던 것이 밝혀진 마당에 이를 공론화할 경우 핵 개발 의혹으로 나빠진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3주전 출항 당시부터 미국이 정보망을 총 가동해 북한 선박의 항로를 추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평양 당국은 상당히 심리적으로 위축됐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우라늄 농축 핵 개발에 대한 해명 요구에 고심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한 수 더 두고 들어간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소 무모해 보이는 미사일 수출 시도에는 북한 당국의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을지 모른다는 견해도 있다.

핵 문제와 함께 미사일 수출 카드를 꺼내 보임으로써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란 설명이다. 이달 초 미국이 북한 미사일 수출 선박의 출항 사실을 언론에 흘려 경고를 보냈음에도 운항을 강행한 데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북한은 미사일의 개발·수출은 주권국 간의 권리라며 국제 상거래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면서도 98년 10월 뉴욕에서 열린 3차 북·미 미사일 협상에서 "매년 10억달러씩 3년간 보상하면 수출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처음 밝혔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지난해 5월 언급한 '2003년까지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조치와 관련한 태도 변화 조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핵 문제에 대한 뾰족한 대응수를 찾지 못한 북한이 미사일 이슈를 부각해 시간 벌기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당국자는 "미국에는 '불가침 협정'체결로 응수하면서, 남한의 반미(反美)시위와 대선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북한으로선 아직은 나설 단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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