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의 한옥에서 최근 만난 김봉호(84·사진) 옹은 기록과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옹이 살고 있는 기와집은 도심의 고층 아파트와 신축 건물 사이에 끼어 외딴 섬처럼 보였다. 1946년 3월에 들어선 이 집은 2000년 5월 ‘김봉호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시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농촌가옥으로 보존이 잘돼 가치를 인정받았다. 3대째 살아온 이 집에서 그는 57년이 넘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우리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식한 세대입니다. 맞춤법도 틀리고 멋진 문장도 구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외국 여행을 갈 때도 쓰는 등 일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살다 보면 고민과 고통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그걸 이겨내고 계속 적었기 때문이죠.”
일기 덕을 본 적도 있다. “30년 전쯤 조상 때부터 내려온 땅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온 이웃에게 땅을 싼값에 준 적이 있었어요. 근데 양도소득세로 수백만원이 나왔습디다. 세무서에 ‘이득 본 게 없다’고 항의하니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데요. 마침 일기장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 감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 옹은 “대를 이어 100년의 세월을 일기장에 담는 게 꿈”이라며 “큰 손자에게 ‘할아버지 일기를 물려받아 계속 쓰다가 시작한 지 100년이 되던 해에 공개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민초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나중엔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만큼 생생한 역사가 있겠습니까.”
광주=유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