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일기장 74권은 6·25 전쟁 이후 민초들 삶의 역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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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사소한 일도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책자나 기록 하나하나가 모여 역사가 되기 때문이죠.”

자택인 광주광역시 광산구 하남동의 한옥에서 최근 만난 김봉호(84·사진) 옹은 기록과 수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옹이 살고 있는 기와집은 도심의 고층 아파트와 신축 건물 사이에 끼어 외딴 섬처럼 보였다. 1946년 3월에 들어선 이 집은 2000년 5월 ‘김봉호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시문화재자료 제25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농촌가옥으로 보존이 잘돼 가치를 인정받았다. 3대째 살아온 이 집에서 그는 57년이 넘도록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김 옹은 안채에 있는 다락에서 일기장 74권을 꺼냈다. 50년대 만들어진 빛바랜 공책부터 최근의 대학노트까지 다양했다. 일기장만 봐도 당시 경제 사정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27년생인 김 옹은 일제시대에 하남공립심상소학교, 송정공립공업학교를 다녔다. 해방 뒤 조선대학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농사를 지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인 52년 10월 24일이다. 날씨와 수확량, 인부의 품삯을 기록한 게 시초가 됐다. 현재는 집에 찾아온 손님·친구 이야기, 주요 일과는 물론 국내·외 큰 사건, 대선·총선 등 정치뉴스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찾기 쉽도록 페이지 한 편에 제목을 달고 이를 자세하게 풀어 쓰고 있다. 하루에 대학노트 한 장 넘게 빼곡히 쓸 때도 있지만 두세 줄만 걸칠 때도 있었다.

“우리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무식한 세대입니다. 맞춤법도 틀리고 멋진 문장도 구사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외국 여행을 갈 때도 쓰는 등 일기를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살다 보면 고민과 고통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지만 그걸 이겨내고 계속 적었기 때문이죠.”

일기 덕을 본 적도 있다. “30년 전쯤 조상 때부터 내려온 땅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온 이웃에게 땅을 싼값에 준 적이 있었어요. 근데 양도소득세로 수백만원이 나왔습디다. 세무서에 ‘이득 본 게 없다’고 항의하니 ‘근거를 제시하라’고 하데요. 마침 일기장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 감면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 옹은 “대를 이어 100년의 세월을 일기장에 담는 게 꿈”이라며 “큰 손자에게 ‘할아버지 일기를 물려받아 계속 쓰다가 시작한 지 100년이 되던 해에 공개하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민초들의 삶에 대한 기록도 나중엔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만큼 생생한 역사가 있겠습니까.”

광주=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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