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발등의 불 이란 제재, 동참하되 최대한 신중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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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정부가 ‘포괄적 이란제재법’ 시행세칙을 발표했다. 10월 초로 예상되던 발표 일정을 한 달 반이나 앞당긴 것이다. 시행세칙을 보고 제재 조치를 결정하겠다던 정부 방침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미국의 동참 압력과 이란의 보복 위협 사이에서 최종 판단을 미룬 채 시간을 벌어보려던 정부로서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시간을 끈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빨리 털어버리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 기업들이 볼 피해가 너무 커 보인다.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 제재 결의(1929호)를 통과시켰다. 이를 근거로 미국은 독자적인 이란 제재법을 만들어 발효시킨 뒤 동맹국과 우방들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별도의 국내법적 조치를 통해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라는 것이다. 이미 유럽연합(EU)과 캐나다, 호주 등이 ‘안보리 결의+α’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으로서도 동참은 불가피해 보인다.

핵 비확산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책임 있는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미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재하는 한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북한 핵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당장의 손실 때문에 국가적 책무를 소홀히 할 경우 장기적으로 국익에 더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작은 피해를 감수하는 편이 실리 면에서도 낫다고 자위하는 수밖에 없다.

이란은 우리에게 큰 시장이고, 중요한 국가다. 연간 교역규모가 10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에 대한 네 번째 원유 공급국이기도 하다. 2000여 개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란과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 흐름에 동참하면서도 기업들의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안보리 결의나 미국의 이란제재법에 규정되지 않은 일반 거래에 대해서는 가급적 지장을 받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데 정부는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