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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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6년 이래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국보 20호를 들고 다닌다.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다보탑(多寶塔) 얘기다. 36년 전 여름 한국조폐공사는 국내기술로 처음 만든 동전 가운데 최고액인 10원짜리에 다보탑을 넣기로 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 원화로 화폐개혁하면서 동전 1백환은 10원으로, 50환은 5원으로, 10환은 1원으로 맞바꾸던 당시다. 다보탑은 1백환 동전의 앞면을 장식하던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했다. 50환의 거북선과 10환의 무궁화 도안은 그대로 5원, 1원짜리 동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민과 일상을 함께 하는 화폐 도안에는 그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지폐의 경우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쓰인다. 수많은 유형문화재 가운데 유일하게 동전 도안으로 다보탑이 채택된 것은 그 독특한 조형미 덕분일 것이다. 다보탑은 단순한 이형(異形)이 아니다. 여느 절집에서 볼 수 없는 그 조형미는 마주보고 서 있는 석가탑(국보 21호)과 함께 불교적 상징으로 풀어야 한다.

불국사(佛國寺)는 말 그대로 부처님의 나라. 두 탑이 서 있는 대웅전 앞뜰은 그 중심, 즉 석가모니 부처가 설법하는 광장이다. 탑은 부처의 몸을 상징한다. 석가탑은 바로 석가모니. 반대편의 다보탑은 과거불(부처의 전신)인 다보여래의 상징이다. 다보여래는 석가모니의 설법이 참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탑의 모양으로 땅 속에서 솟아났다. 따라서 다보탑은 진리의 찬연함을 증명하듯 온갖 보물로 장식된 장엄미(莊嚴美) 그 자체여야 한다.

두 탑으로 상징된 공간은 신라인들이 확신했던 지존의 이상세계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다듬어진 그 상징은 1천2백년의 세월 동안 신화와 전설, 역사와 문화를 가르쳐왔다. 그 풍상의 와중에 수난도 적지 않았다. 지난 9월에도 지반이 약해 탑이 기울고 이끼가 껴 표면이 삭는다는 보고가 있었다. 불교문화의 최절정기에 세워진 탑이고, 늘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정도로 친근한 탑이기에 우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게 마련이다.

경주시가 다보·석가탑과 토함산 넘어 감은사지 서탑까지 보수하겠다고 9일 밝혔다.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석탑처럼 선거 열풍이나 엄동설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문화재를 가꾸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오병상 대중문화팀장

ob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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