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대수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3면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로드 홀' 벙커가 마침내 수술대에 오른다.

로드홀 벙커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의 17번홀(파4·4백14m) 그린 앞에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깊은 벙커다.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장은 조만간 로드 홀 벙커 개조작업에 들어가 그린 바로 앞에 위치한 벙커를 약 1.2m 뒤로 후퇴시키고, 골퍼들의 키를 집어 삼켰던 벙커 깊이를 60㎝ 줄여 1.8m 정도로 만들기로 했다. 이와 함께 벙커의 직경을 줄이고 벙커에 공이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경사부분도 더 완만하게 손질하기로 했다.

골프장측이 이 벙커를 손보기로 한 것은 공이 벙커에 들어가면 빼내기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는 연간 수천명에 달하는 일반 골퍼를 위해서다.

비단 일반 골퍼뿐 아니라 수많은 프로골퍼도 이 벙커 때문에 수없이 땅을 쳤다.

데이비드 듀발(미국)은 2000년 브리티시오픈 때 로드 홀의 덫에 걸려 무려 4타만에 벙커에서 탈출했으며, 1990년에는 우승에 도전하던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스페인)의 꿈이 이 벙커 때문에 한순간에 깨졌다. 올해 열린 던힐 링크스토너먼트 때는 벙커샷의 1인자인 어니 엘스(남아공)도 4타를 까먹으며 쿼드러플 보기를 기록했다.

올드 코스를 관리하는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 관광관리국 캐롤라인 너스는 "코스 교체는 오랜 기간 세밀히 검토한 끝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스는 "이 벙커의 외형은 벙커를 탈출하려는 골퍼나 벙커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방문객들에 의해 계속 바뀌어 왔다"면서 이번 공사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벙커를 많이 뜯어고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벙커를 더 넓게 하면 더 많은 샷이 벙커에 빠질 것이고 여전히 점수를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전통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의 반대도 만만찮다.

세인트 앤드루스 뉴클럽의 캡틴이자 50년간 이 코스에서 라운드해온 데이비드 말콤은 "코스 개조를 놓고 온 마을이 들끓고 있다"면서 "17번홀의 전체적인 특징을 고치는 것은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말콤은 "로드홀 벙커를 잃는 것은 절친한 옛 친구를 잃는 것과도 같다"고 했다.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가운데 시도되는 개조작업은 내년 3월 끝나게 된다.

성백유 기자

carolin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