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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해학으로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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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올해 중견 극작·연출가 오태석(62)씨의 작업은 자연에 대한 사랑과 한국 사회에 대한 애정으로 요약된다. 그 내용을 감싸는 형식은 전통연희다.

한해를 정리하는 그의 무대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12일∼2003년 2월 23일, 극장 아룽구지)다. 미래 어느날 일본에 다시 먹힐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의 위기를 그린 '지네와 지렁이', 비무장지대를 배경으로 통일 지향의 환경생태 문제를 환기시킨 '내사랑 DMZ'에 이어 올해 선보이는 세번째 작품이다.

남한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을 오가는 이들 작품의 지역적 배경은 결국 '이땅'이라는 한 단어로 모아진다. 오씨는 그 경계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긍정하면서 다같이 잘 사는 사회를 희구하고 있다.

이번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에서는 그런 색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념의 그늘에 가려 뭍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제주도 4·3사건에다 이곳 전통연희 양식인 '디딤불미'로 옷을 입힌 이색적인 작품이다. 형식이 내용을 담는 그릇이라면, 다 함께 잘 살자는 전통의 대동(大同)정신을 기리는 디딤불미는 주제를 깜싸는 적절한 선택이다.

디딤불미는 제주도에서 이른 봄 풍년을 기리는 불받기 민속이다. 뭍의 팔도 무당이 불을 받아다가 합화(合火)해 그 불로 쇳물을 끓여 농기구를 벼르는데 이때 하는 풀무질 합동연희를 디딤불미라 부른다. 이 풀무질은 40여명이 함께 작업하는 매우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연극은 해방 직후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맹구자·성춘배 부부의 이야기다. 이 선하디 선한 인생이 4·3사건에 얽혀 어떻게 뒤틀리는가를 오씨 특유의 해학으로 풀어낸다. 물론 비극이 희극으로 탈바꿈하는 반전의 과정에서 짙은 비애감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 전통 연희의 특징이기도 하다.

대동단결의 상징성은 제목에 잘 함축돼 있다. 오씨는 "앞산은 남성을, 오금(무릎의 구부러진 쪽의 안쪽 관절)은 여성을 뜻한다"며 "너나없이 함께 밀고 당기며 힘을 합쳐 잘 살아보자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오씨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배경이 되는 제주도의 질박한 방언들이 수다하게 등장한다.

극단 목화의 간판 황정민과 이병선이 맹구자·성춘배 부부로 출연하며, 정진각·이명호·김홍준·강현식 등이 뒤를 받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공휴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일 오후 3시·6시, 월 쉼. 02-745-3967.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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