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 PL법이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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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제품의 결함으로 인한 인명이나 재산상의 피해가 생겼을 때 제조자가 배상책임을 지는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법 이란 게 있죠. 이처럼 졸업생이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때 교수가 학생의 하자를 책임지는 교수책임(Professor's Liability)법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

대졸 신입사원이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나 기술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준의 26점(1백점 만점 기준)에 불과하다는 기사(본지 12월 4일자 E1면)를 접한 한 대학 교수는 자조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대학생은 e-메일을 통해 기사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는 "대학이 실무교육을 담당하는 직업학교도 아닌데 어떻게 대학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을 맞춰줄 수 있느냐"며 "대학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쌓은 뒤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따로 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불평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 학생은 "대학 교육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데는 기업의 책임도 크다"며 "기업이 대학에 대한 투자와 산학 연계 등을 확대할 생각은 않고 입에 맞는 인재가 없다고 한탄하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처사"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인 S사 인사담당 임원은 "면접을 볼 때 기술적인 내용은 물어보기가 겁이 날 정도"라고 말했다. 영어 구사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최근 많이 늘어났지만 실무적 내용에 대해선 거의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대학 교육이 기업의 요구수준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대학과 기업의 책임을 무시할 순 없지만 교육의 틀을 짜는 정부의 잘못도 크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대학의 자율권을 좀더 인정하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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