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눈·귀 쏠린 TV토론 사회자·진행방식 바꿔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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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양자 대결 구도로 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세미나장이나 다방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대선 이야기에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대선 분위기가 완연히 무르익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각 당 대선 후보자들은 미디어 선거의 꽃인 TV토론을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보고 준비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난항을 거듭하다가 사회자와 진행방식 등을 최근 확정했다. 후보합동 TV 토론은 KBS·MBC·SBS가 차례로 주관하는데, 3일엔 정치·외교·통일을 다뤘고, 10일엔 경제·과학, 16일엔 사회·여성·문화 등의 주제를 다루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위원회가 확정한 사회자나 진행방식이 고답적이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획기적인 개선책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먼저 TV토론의 사회를 맡아본 경험이 없는 교수를 사회자로 선정한 점이다. TV토론 사회자는 전문지식이 있다고 해서 자격을 갖춘 것은 아니다. 카메라 샷을 비롯해 TV 토론의 작동 메커니즘에 익숙하고, 사회자로서의 카리스마를 갖춰 후보자들의 작전과 의도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유익한 정보와 인물 됨됨이를 판단할 수 있도록 토론을 이끌어가야 한다.

미국이나 독일에는 방송 앵커나 기자가 TV 토론 사회자를 맡는 것이 관례다.

교수가 사회를 맡는다는 건 한국 방송의 앵커나 기자 중 중립성과 균형성을 갖춘 사람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한국 방송은 개혁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둘째, 세번의 토론을 같은 사회자가 모두 맡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여성사회자를 시도해볼 때다. 유권자의 반이 여성이며, 여성표를 얻기 위해 각 후보들은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독일의 경우 지난 총리 선거 TV토론 때 여성 앵커가 사회를 맡아 호응을 얻은 적이 있다. 또 사회 경험이 있는 문학인이나 예술가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셋째는 TV 토론이 열리는 지역 문제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지방이 죽어간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작 이 같은 중요한 행사에서는 지방을 외면하고 있다. 토론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부산이나 대전에서 여는 것은 어떨지, 지난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강원도민을 위해 강릉에서 개최하는 것은 희망 정치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넷째는 토론 장소다. 미국같이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벗어나 대학이나 시민회관에서 개최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를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시민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어 시민들이 참여하고, 보는 것은 선거문화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같은 대선 TV 토론의 문제점들은 미디어 정치 시대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각 당에 근본적 책임이 있다. TV토론이 유권자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체 공청회나 세미나를 통해 다양한 논의와 준비를 했어야만 했다.

현 위원회의 위원들을 보면 TV토론 전문가가 거의 없다는 것도 문제다.

사전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TV 토론연구 특별팀'을 가동시켜 그 결과를 위원회가 받아들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금이라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TV토론 방식을 재구성해 선거문화 선진화에 기여하길 바란다.

미디어 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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