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가는 길에 나는 보았네
산굽이마다 지천으로 핀
노랗고 하얗고 빨간
앉은뱅이꽃
오 센티도 안되는 작은 키
그러나 수시로 불어오는
강풍에도 허리 숙이지 않는 거만함이여
산 아래 마을은
한여름이 달아오른 가마솥인데
눈 속에 핀 꽃
두어 달 살다 가는 마디 짧은 삶
-이재무(1958∼) '높은 산 낮은 꽃' 부분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백두산 고원지대의 척박한 자갈밭에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나 짧은 삶을 해마다 이어간다. 보는 사람 별로 없어도 이 조그만 앉은뱅이꽃들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끝모를 미래까지 유구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이에 견주어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거창한 이데올로기의 운명은 얼마나 허망한가.
김광규<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