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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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백두산 가는 길에 나는 보았네

산굽이마다 지천으로 핀

노랗고 하얗고 빨간

앉은뱅이꽃

오 센티도 안되는 작은 키

그러나 수시로 불어오는

강풍에도 허리 숙이지 않는 거만함이여

산 아래 마을은

한여름이 달아오른 가마솥인데

눈 속에 핀 꽃

두어 달 살다 가는 마디 짧은 삶

-이재무(1958∼) '높은 산 낮은 꽃' 부분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백두산 고원지대의 척박한 자갈밭에도 이름 모를 들꽃들이 피어나 짧은 삶을 해마다 이어간다. 보는 사람 별로 없어도 이 조그만 앉은뱅이꽃들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끝모를 미래까지 유구한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이에 견주어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거창한 이데올로기의 운명은 얼마나 허망한가.

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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