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교제아저씨들에'매운 맛':바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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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바운스'는 시쳇말로 '쿨'하다. 원조교제라는 께끄름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영상은 깔끔하다. "이런 못된 아저씨가 다 있나. 사회가 정말 썩을 대로 썩었구나"라는 식으로 목청을 돋우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할 말은 다 한다. 10대 소녀 셋의 상큼한 우정도 인상적이다.

'바운스'의 분위기는 지난해 개봉됐던 한일 합작영화 '고(Go)'와 유사하다. 재일교포 3세의 정체성 찾기란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았던 '고'처럼 '바운스' 또한 일본의 왜곡된 성문화를 질타하면서도 내내 발걸음이 가볍다. 땅에 떨어지는 순간 되튀어 오르는 공(바운스)처럼…. 두 영화 모두 젊음의 에너지를 주목한 까닭일까.

'바운스'는 '가미카제 택시'(1995년), '주바쿠'(99년)를 연출했던 하라다 마사토(原田眞人) 감독의 작품이다. 귀네스 팰트로, 벤 애플렉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바운스'와 혼동할 일이 아니다.

일본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왔던 하라다 감독의 개성은 '바운스'에서도 여전하다. 각각 야쿠자(가미카제 택시)와 금융 스캔들(주바쿠)을 통해 일본인의 정체성을 희화화했던 감독은 이번에도 원조교제의 '원조국'인 일본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영화에선 일본의 너저분한 성문화가 그려진다. 소녀들이 입었던 팬티를 사고 팔고, 그들의 몸매를 찍는 비디오 사업이 번창하고, 또 이를 이용해 목돈을 만지려는 아이들의 일그러진 욕망이 출렁댄다.

그런데도 영화는 발랄하다.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욕정을 한방에 날려보내는 소녀들의 하룻밤 모험기가 꽤나 역동적이다. 튀는 소재, 도발적 내용을 역겹지 않게 풀어가는 감독의 야무진 손매가 돋보인다. 부도덕한 어른들을 따끔하게 꼬집으면서도 결코 잘난 척하지 않는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세 여학생의 하룻밤 일정을 따라간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을 갖고 미국 뉴욕으로 떠나려고 하는 리사(오카모토 유키코). 그는 모자라는 여비를 충당하기 위해 도쿄의 번화가인 시부야에서 만난 다른 두 친구인 존코(사토 히토미)·라쿠(사토 야스에)와 함께 '아저씨 사냥'에 나선다. 그간 힘들여 모은 돈을 성인 비디오·인터넷 사업을 하는 일당에게 강탈당한 것이다.

'바운스'에선 일본의 기성 세대가 도마 위에 오른다. 여학생들 때문에 사업이 잘 안된다고 흥분하는 야쿠자, 어린 소녀들에게 금품을 뺏기는 어리숙한 직장인, '일본은 우리가 이끈다'면서도 뒤로는 호박씨를 까는 고위 관료 등. 일본인은 아시아에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군인 출신의 할아버지도 등장한다. 리사·존코·라쿠 셋은 이들 아저씨에게 전기총을 발사하며 한탕을 노린다.

영화에 묘사된 학생들도 걱정스러울 정도다. 그들은 오로지 돈만을 숭상한다. 친구끼리 아저씨를 소개하고, 낙태 수술도 별다른 거리낌 없이 받는다. "이젠 중학생 시대다. (매춘에선) 고교생도 할머니다"며 농담처럼 주고 받는 말이 충격적이다.

이렇듯 우울한 얘기를 하면서도 '바운스'의 마무리는 상쾌하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행 비행기표를 구해 공항으로 떠나는 리사를 배웅하는 존코와 라쿠의 모습이 선하게 남는다. "시험 공부가 아닌, 자기를 위한 공부를 위해 뉴욕으로 간다"는 리사의 말은 경직화된 일본의 입시 교육, 나아가 비틀대는 한국의 교육 현장을 반성하게 한다. '가미카제 택시'에서 하라다 감독과 연을 맺었던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도 출연한다. 다음달 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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