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의류도 이젠 아시아가 실험무대"-美 센존 창업자 마리 그레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5면

11월 중순 캘리포니아의 가을 햇살은 한국의 초봄처럼 따사로웠다.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있는 미국 1위의 여성 의류 디자이너 브랜드인 센존의 본사는 화려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별다른 장식 없이 수수했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마리 그레이(68)여사의 사무실 문을 열자 예쁜 애완견 네 마리가 뛰어나왔다. 항상 애완견을 데리고 다닌다는 그에게 왜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항상 나를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주죠. "그에게 강아지는 인생의 동반자 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했다. 책상 위엔 작업 중인 디자인들이 놓여 있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음을 느꼈다.

그의 어깨 너머에는 센존의 공동 창업자이자 남편인 로버트 그레이, 센존의 최고경영자(CEO)인 딸 켈리 그레이와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여러 장이 우아한 사진틀 속에 가득 들어 있었다.

-가족을 매우 중시하는 것 같다.

"나에게 가족은 가장 중요한 존재다. 만약 당신이 가족과 가까워질 수 없다면 인생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가족과 함께 꿈과 목적을 향해 가고 또 이를 즐기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유명 모델을 하다가 의류사업에 뛰어들었는데.

"1961년 니트 의류를 입고 패션쇼를 하다가 갑자기 내가 잠깐 걸친 옷을 내 옷으로 만들어 영원히 입고 싶었다. 처음에는 니트를 사려고 했지만 내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뜨개질을 전혀 몰랐지만 무작정 뜨게질 도구를 사서 뜨개질을 시작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내가 조용히 앉아서 뜨개질이나 하리라고 믿지 않았지만 결국 밤낮으로 뜨개질을 해 드레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뜨개질을 어떻게 사업에 연결시켰나.

"62년 약혼자인 로버트 그레이와 나는 내가 만든 옷을 바이어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로버트는 매력적인 약혼자가 뜨개질을 그만두기를 바랐기 때문에 바이어가 그옷에 대해 혹평을 하길 바랐다. 바이어가 사지 않으면 내가 뜨개질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바이어는 옷을 모두 구매했고 회사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그때 로버트 그레이가 엉겁결에 나의 모델 예명인 '센존'이라고 대답해 회사 이름이 센존이 됐다."

-사업에 어려움은 없었나.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어려움은 매일 닥쳐온다. 사업 초기에는 일이 너무 많고 자본이 적어 고생했다. 센존은 상품을 직접 디자인해서 생산까지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실수가 생길 요소가 더 많다. 65년 분홍색 나비 리본이 달린 녹색 니트 의류가 날개돋친 듯 팔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달여 동안 그 제품 한 가지만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른 인기 상품처럼 판매가 줄어들었고 갑자기 이를 대체할 만한 상품도 없었다. 센존 창립 이후 처음으로 판매가 줄어 부도 위기에까지 몰렸다. 그 후 센존은 한가지 스타일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스타일이 포함된 컬렉션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

-지향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센존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목표는 변함없이 우아하고 클래식한 디자인과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지난 40년간 이 원칙을 지켜왔다. 바로 이 점이 바쁜 일과를 보내는 성공한 여성들에게 호소력있게 다가선 것 같다."

-여성들에게 센존은 편리하고 실용적이라는 평을 듣는다는데.

"잦은 여행에도 언제든지 그냥 짐을 싸고 펴서 입고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구김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센존 니트다. 여성들은 이런 편리함 때문에 센존을 좋아하는 것 같다. 성공한 여성들은 바쁜 삶을 살면서도 정장을 좋아하고 외출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의 옷에 대해 주목하고 칭찬해 주는 걸 좋아한다. 센존이 이런 여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케팅 전략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에 초점을 맞추고 있나.

"그렇다.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여성들에게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다. 연예인보다 고위 관료의 부인이나 방송사 아나운서·앵커 그리고 정치인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고 자부한다. 95년 7월 당시 영부인인 힐러리 여사를 위해 옷을 맞춰주고 나니 남모를 감회에 빠져들었다. 유고에서 이민 온 내가 대통령 부인과 대화를 나누고 백악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해외 사업 전략은.

"예전에는 세계 전지역에 동시에 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예상했던 것보다 효과가 적어 최근 전략을 바꿨다. 한국·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초점을 맞춘 뒤 성공할 경우 유럽 등으로 진출하는 방식을 취할 예정이다."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다.

"센존 직원의 30%가 한국계다. 우리는 미국을 제외한 국가 중에서 한국에서 올리는 매출이 가장 많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뛰어나고 도덕적으로도 훌륭하다. 센존은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운영되는 회사이기 때문에 도덕성이 중요하다. 또 센존의 클래식한 스타일이 한국 고객의 입맛에 맞는 것 같다. 우리 직원들은 회사 브랜드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갖고 있고 업무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이다."

-새롭게 준비 중인 사업 계획은.

"예전에는 사업을 니트 의류 한 분야에 국한했지만 이젠 신발·핸드백·보석 등 다른 분야로 넓히고 있다. 토털 브랜드에 더 관심이 많다. 생활 소품인 홈 컬렉션 분야도 확장하고 있다. 홈 컬렉션은 내년에 한국에도 매장을 낼 예정이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나.

"여가 시간이 별로 없다. 시간이 나면 정원 꾸미기를 좋아한다. 채소 등 여러 가지 식물을 키우지만 특히 장미를 많이 키운다. 그리고 소설이나 전기집 읽는 것도 즐긴다."

-동양계 여성에게 잘 맞을 색상은 무엇인가.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업 관련 일에 참석한다면 짙은 남색이나 어두운 색상을 입어야 할 것이다. 입어서 본인이 기분 좋고 스스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색상이 가장 좋다. 어울리는 색상은 개성에 따라 다르다."

어바인(미 캘리포니아)=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