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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가득한 수소와 헬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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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대인에게 지상의 세계와 별들의 세계가 같은 물질로 이뤄졌을지, 다른 물질로 이뤄졌을지 설문조사를 했다면 대부분은 당연히 다른 물질로 이뤄졌으리라고 직관적인 답을 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양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던 아리스토텔레스도 불완전한 지상의 세계는 물·불·공기·흙의 네 가지 원소로 이뤄졌고, 완전한 천상의 세계는 지상의 세계와 달리 에테르라고 명명한 제5원소로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그와 관련된 오늘의 퀴즈는 2: element first discovered in the S.이다. S.에서 처음 발견된 원소와 2라는 수를 연결지으라는 말이다.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삼라만상은 자연에 존재하는 약 90종류의 원소로 이뤄졌다. 그 중에서 금·은·구리·황 등 원소 상태로 자연에 존재하는 원소들은 고대인에게도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철이 산화철로 철광석에 들어 있듯이 대부분의 원소는 화합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의 원소들을 조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따라서 원소 발견의 역사는 과학의, 특히 화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18세기 말엽에는 약 30 종류의 원소가 알려졌고,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만든 1860년께는 원소의 종류가 두 배로 늘어났다. 이들은 모두 지구상에서 발견된 원소들이다. 그런데 프랑스의 장상(Janssen)이 1868년 개기일식 때 태양 홍염의 스펙트럼에서 지구상에서 관찰되지 않은 새로운 원소의 선을 발견했다. 이 원소는 태양(sun)을 뜻하는 그리스어 헬리오스(helios)를 따서 헬륨(helium)이라고 이름지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들었다면 "그럼 그렇지"하고 반가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후 방사능 동위원소를 포함한 광석에서 헬륨이 발견됐다.러더퍼드가 밝힌 대로 방사능 붕괴의 결과로 나온 알파 입자는 헬륨의 원자핵이기 때문에 알파 입자가 주위에서 전자를 얻어 헬륨 기체로 바뀐 것이다. 태양에만 있는 줄로 알았던 헬륨이 지구상에서도 발견됐을 뿐 아니라 후일 대형 망원경으로 관찰된 별과 은하의 성분 원소 중에서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원소는 하나도 없었다.

현대 과학은 약 1백50억년 전 우주가 빅뱅으로 불리는 대폭발로 출발한 지 처음 3분 동안에 수소와 헬륨이 3:1의 비율로 만들어진 것을 밝혀냈다. 세실리아 페인은 별빛의 스펙트럼으로부터 수소가 우주의 주성분이라는 첫 단서를 잡아냈다. 그리고 장상은 우주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헬륨을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주에서 제일 풍부한 수소는 원자번호가 1이고, 두 번째로 풍부한 헬륨은 원자번호가 2다. 원자번호는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이니까 양성자만 고려한다면 헬륨에는 두 개의 수소가 들어 있는 셈이다.

지금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수십억 광년 거리에 있는 은하를 관찰해 우주가 전체적으로 수소와 헬륨으로 이뤄진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사람의 생각이란 것도 1백50억년 우주 진화의 결과이고 보면 때로는 잘못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 제한적인 인간의 지능이 자연에 관한 그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허블망원경을 통해 우주에 가득한 수소와 헬륨을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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