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차질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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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소액주주 권리보호를 위해 도입된 주식매수청구권의 빈번한 행사 때문에 기업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기업 합병이나 영업 양수도에 반대하는 주주가 보유 주식을 일정 가격(주식매수청구 가격)에 사 달라고 해당 업체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당초 취지와는 달리 이 제도가 소액주주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변질됐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즉 합병 등으로 인한 기업의 발전 가능성 등은 뒷전으로 미룬 채 주주들은 매수청구 가격이 현 주가보다 높으면 여지없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해 차익을 챙기고 있다.

이에 따라 합병을 추진했던 기업들이 대규모 주식 매수 대금을 감당하지 못해 합병이나 영업 양수도를 속속 포기하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태평양과 태평양산업간의 합병이 대규모 주식 매수청구로 인해 무산됐고, 롯데삼강-롯데쇼핑 식품사업부, 더존디지털-뉴소프트기술, 아이엠아이티-넥솔아이티의 합병도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표 참조>

태평양은 주식매수청구권이 행사된 주식을 모두 사들이는 데 1천6백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난 14일 합병을 포기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시 매수청구 가격이 13만1천9백65원으로 14일 당시 주가 11만6천5백원보다 13% 가량 높았기 때문에 매수청구권이 대규모로 행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점 및 대책=전문가들은 매수청구권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손질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합병 등을 위한 주식 명의 개서 정지 기준일 이전에 사들인 주식에 대해 아무런 차별없이 전량 매수청구권을 주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매수청구 가격은 이사회가 합병 등을 결의한 이후 산출된다. 또 매수청구 가격이 나오고 2주일 이내 명의 개서 정지 기준일이 결정된다. 매수청구 가격 결정과 명의 개서 정지 기준일 사이에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보다 낮으면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들인다. 가령 매입 당시 주가가 1만원이고 매수청구 가격은 1만3천원이라면 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3천원의 차익을 안전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설령 매입 이후 주가가 매입가격보다 떨어져도 매수청구권이란 안전 장치가 있는 만큼 별 걱정없이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임시주총에서 합병하기로 결정하면 20일간의 매수 청구권 행사 기간이 부여되는 점도 문제다. 사전에 합병 반대의사를 표명한 주주는 이 기간 동안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보다 낮게 나올 경우에만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된다. 반면 사전에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주가가 매수청구 가격보다 높으면 권리 행사를 포기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대에 따른 불이익은 전혀 없는 셈이다.

증권연구원 김형태 박사는 "주식 보유 기간에 따라 매수청구권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며 "해당 주식을 1년간 보유한 주주와 명의 개서 정지일 직전에 주식을 사들인 주주를 똑 같이 대우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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