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후보 노무현]"鄭후보 조사결과 승복에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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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盧武鉉)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여의도 민주당사 전체가 들썩거렸다.

그 중에서도 8층 후보실은 말 그대로 눈물과 환호의 바다였다.

후보실을 꽉 메운 채 TV로 생중계되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던 40여명의 당직자들은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외침 속에서 일부 청년 당직자들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발표 5분 후쯤 정대철(鄭大哲)선대위원장·김원기(金元基)고문의 어깨에 둘러싸여 입장한 盧후보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카메라 플래시와 쏟아지는 함성 속에 묻혔지만 盧후보는 소리내어 밝게 웃었다.

한때 소원한 관계였던 한화갑(韓和甲)대표가 후보실을 찾아 盧후보를 얼싸안자 당직자들의 환호는 절정을 이뤘다. 김희선(金希宣)의원은 "기적이다"고 소리치며 협상단을 이끌었던 이해찬(李海瓚)의원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한 관계자는 눈물을 훔치며 "고비 때마다 등장했던 盧후보의 '양보와 결단'을 국민들이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 밖엔 노사모 회원 1백여명의 "노무현 짱"환호가, 盧후보의 기자회견이 있었던 2층 기자실엔 "힘내라 힘! 싸워라 싸! 싸워서 이겨라!"는 노랫소리가 흘러넘쳤다.

민주당사에 희망의 기운이 돈 건 밤 11시부터였다. 정몽준(鄭夢準)후보의 우세 소식을 전한 9시 MBC 뉴스 보도 이후 한때 패배를 인정하는 듯했던 어두운 분위기가 일시에 걷혔다. 이에 앞서 김원기 고문은 "국민 경선 후보를 지키지 못하고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기자간담회 도중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11시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이 밝은 표정으로 "밤 12시에 르네상스 호텔에서 결과 발표가 있다"고 말할 때부터 분위기는 반전됐다. 11시가 넘어서자 선대위 관계자들이 모두 모여있던 9층 선대위원장실에선 이따금씩 웃음이 흘러나왔고, 11시40분쯤엔 "2개 중 한개는 확실히 이겼다더라"는 구체적인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盧후보의 승리가 확정된 르네상스 호텔 4층 토파즈 홀 현장을 바짝 조였던 엄숙한 분위기도 일순간에 녹아내렸다. 당초 12시로 예정됐던 결과 발표는 방송사 생중계 준비관계로 25일 0시10분으로 밀렸다.

鄭후보측 선대위 민창기 홍보위원장이 "盧후보가 단일후보로 결정됐다"고 말하는 순간 盧후보 관계자들은 환호했고, 鄭후보 진영의 표정은 석고처럼 굳어졌다.

승복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閔위원장은 "마음 속으로 盧후보의 승리를 축하한다"며 "승복하는 모습이 정치사에 큰 획을 긋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盧후보는 이어 0시38분쯤 기자회견을 열고 "12월 19일 승리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당장의 의미겠지만 정치인들이 서로 양보하고 규칙을 지켜내고 페어 플레이 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희망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을 더 크게 생각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盧후보는 "불투명한 전망 아래서 단일화 결단을 함께 해주신 정몽준 후보께 감사드린다"며 "끝까지 선전해주시고 조금 전 기자회견에서 저를 도와준다고 해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4월 28일 이후 지금까지 힘겨운 과정이었다"면서 "좀더 깊이있고 좀더 성숙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국민 앞에 겸손하고 성실한 후보로 최선을 다하고 12월 19일 승리로써, 그 이후 떳떳한 대통령으로서 저를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의 의미는.

"제가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국민들이 보실 때는 지금까지 단일화라는, 잘 못하던 일을 함께 해낸 데 국민들이 위안을 받으신 것같다. "

-지금의 기분은.

"원체 가슴을 졸여오던 중에 소식을 들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쁘다. 잘 하겠다. 도와달라. "

盧후보는 기자실을 떠나려다 환호하는 노사모 회원을 보고 다시 돌아와 "노사모 여러분과 함께 길거리에서 밤새 환호하고 노래하고 싶지만 진 분도 있으니 오늘은 그냥 떠나게 해달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현철·서승욱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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