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은행 매각 표류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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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흥은행 매각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정부·경영진·노조 모두의 책임이다.

외환위기 이후 2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살아 남았던 조흥은행이니만큼, 그간의 구조조정이나 현재의 매각 절차는 오로지 '최대한의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것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노조가 실력으로 매각을 방해하고 경영진·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결국 공적자금의 주인인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국내외 4개 컨소시엄이 원매자로 나선 상태에서 일정대로라면 이달 중 실사(實査)가 끝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노조가 대출자료 원본을 갖고 가 제대로 실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는 매각 자체가 아니라 '졸속 매각'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다. 그간의 구조조정으로 실적이 좋아져 지금 팔지 않고 나중에 팔면 더 비싸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 주장대로 더 비싸게 팔려면, 다시 말해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하려면, 실사에 협조하며 은행의 나아진 경영상태를 적극적으로 알려 현재가치를 올려야 옳다. 지금처럼 법을 어겨가며 실사를 방해하는 노조는 스스로 은행의 현재가치를 깎아내리는 셈이다.

매각 시기를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지금 우선협상대상자를 정한다 해도 본계약 등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려면 어차피 다음 정권까지 가야 한다. 다음 정권에 가서 새로 매각 절차를 밟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오히려 대우자동차·한보철강 등의 경우에서 보듯 매각을 늦추면서 가격이 현저히 떨어져 결국 국민이 큰 손해를 본 경우가 더 많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조흥은행 노조와 경영진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한다. 차제에 엄정한 법 적용과 집행으로 확실한 기준과 전례를 세우기 바란다. 차기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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