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24>황제 우즈도 오버파로 무너지는 게 골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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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14면

골프는 할수록 어렵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마저 오버파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골프는 어렵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데 골퍼들의 실력을 단계별로 나눠보면 어떻게 될까. 골프 무림에선 골퍼를 크게 14단계로 나눈다. 강호의 고수들이 분석한 수준별 골퍼의 특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첫째는 골졸(卒)이다. 샷과 매너 모두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초보 단계다. 골프클럽을 든 것만으로 자기가 골퍼인 줄 안다. 공이 잘 맞지 않는 날에는 캐디나 동반자를 탓한다.

둘째는 골사(肆)다. ‘선비 사(士)’가 아닌 ‘방자할 사(肆)’를 쓴다. 가끔씩 80대 스코어를 기록하면서 골프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듯 기고만장하는 단계다. 비싼 장비를 겁없이 사들인다.

셋째는 골마(痲)다. 낮이나 밤이나 눈앞에 하얀 공이 어른거리는 단계다. 필드에 못 나가면 일주일 내내 끙끙 앓는다. 친지의 경조사는 안중에 없고, 결근도 불사한다.
넷째는 골상(孀)이다. 아내를 과부로 만드는 단계다. 주말 과부는 물론이고, 종종 주중 과부를 만든다. 직장 생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섯째는 골포(怖)다. 두려움(怖)을 느끼고 절제를 아는 단계다. 골프가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골프 클럽을 처박아두는 단계다. 자연히 라운드 수가 줄어든다.
여섯째는 골차(且)다. 골프 클럽을 다시 찾는 단계다. 샷과 매너가 한결 성숙해지면서 필드에 나갈 때 복장에도 신경을 쓴다.

일곱째는 골궁(窮)이다. 드로와 페이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등 고난이도의 기술을 몸에 익힌 수준이다. 골프를 통해 삶의 진리를 깨닫는 단계다.

여덟째는 골남(藍)이다. 푸른 잔디 앞에 겸손함을 느끼며 버디를 좇아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내기를 즐기되 내기에 매몰되지 않으며 경망스럽게 라운드 도중 동반자에게 레슨을 하지 않는다. 이 단계부터 골프를 진정으로 알게 돼 비로소 작위를 얻게 된다. 골남은 ‘남작(藍作)’이라고도 불린다.

아홉째는 골자(慈)다. 골프를 하면서 자비심을 느낀다. 자연과 한 몸이 되는 단계다. 스코어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면서 라운드 도중 자기 자신을 잊는다. ‘자작(慈作)으로 불린다.

열 번째는 골백(百)이다. 비로소 백작(百作)으로 불리는 단계다. 한 번의 라운드에서 백 번의 라운드를 경험한다.

열한 번째는 골후(厚)다. 후작(厚作)으로 불린다. 두터운 믿음이 생기는 단계. 도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이지만 지혜와 샷을 가볍게 드러내지 않는다.

열두 번째는 골공(空)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야 비로소 공작(空作)의 칭호를 얻게 된다. 모든 것을 다 비우는 무아의 지경이다. 입신의 경지가 머지않았다.

열세 번째는 골선(仙)이다. 골프의 희로애락을 모두 겪은 뒤 드디어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단계다. 어느 코스에 서든 세인트앤드루스요, 오거스타 내셔널이다.

열네 번째는 골성(聖)이다. 골프의 마지막 단계.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아의 경지에서 골프를 즐긴다.

골프 무림에선 첫째 ‘골졸’에서 일곱째 ‘골궁’까지는 골프의 참맛을 알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여덟 번째 ‘골남’에 이르러서야 골프 좀 친다는 소리를 듣는다. 독자 여러분은 어느 단계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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