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정부, 북한지역 청구권도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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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는 대일 협상에서 북한 지역의 청구권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목상으로는 1948년 제3차 유엔총회의 결의에 근거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 내의 유일한 합법정부이기 때문에 대일 청구권에는 남한뿐 아니라 북한 지역의 청구권도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박정희 정부는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고, 미국.소련 간 냉전이 치열하게 전개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일 청구권 협상에 북한 지역을 포함하는 문제는 쉽사리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이를 관철하기 위해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청구권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비공개 협정을 일본과 맺는 방안까지 검토했다.

당시 정부 안에서는 한반도 통일 이전에 북한 지역의 청구권 문제에 대해 북한과 구체적인 교섭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내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박정희 정부는 64년 3월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지역의 청구권 문제를 협정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양국 정부가 각각 알아서 국민을 납득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태도 변화는 63년 11월 새로 출범한 미국 린든 존슨 행정부의 강력한 압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근 공개된 미 외교문서에 따르면 존슨 행정부는 베트남전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한.일 수교회담마저 지연된다면 한.미.일 3국이 3각 동맹체제를 구축해 소련.중국.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들의 위협에 대처하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일 양측에 "회담을 빨리 성사시키라"고 강도높은 압력을 가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대일청구권에 북한 지역의 청구권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박정희 정부의 제안을 일본이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에 북한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진행될 북ㆍ일 수교협상을 위해 이번에 공개된 한ㆍ일수교회담 문서를 북측에 제공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현대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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