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집착’ 애플에 뿔난 주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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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기업이 주주에 대한 배당에 인색하면서 현금을 잔뜩 쌓아 놓고 있다면 온갖 눈총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미국 내 대표적 ‘현금 부자’ 기업인 애플도 예외는 아니다. 12일(현지시간) 한 애널리스트가 애플에 보내는 ‘공개 서한’을 통해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미국 금융정보업체인 샌퍼드 번스타인의 토니 사코나기 애널리스트는 이날 “애플의 현금은 급증하는데 그중 일부도 돌려주지 않으려 하니 주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며 “돈을 어떻게 쓸지 주주들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4%의 배당과 3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제시했다.

2분기 말 현재 애플의 현금성 자산은 458억 달러(약 54조3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상장기업 중 최고 수준이며 한국 10대 그룹 현금 보유량(4월 기준 52조원)을 능가하는 규모다. 많이 벌기도 하지만 잘 쓰지 않으니 돈이 쌓인다. 경쟁 기업과 달리 그간 굵직한 인수합병(M&A)도 없었고, 주주 배당을 실시한 건 1995년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일부 미국 네티즌은 사코나기의 주장에 대해 “욕심이 지나치다”며 반론을 펴고 있다. 최근 5년간 애플의 주가가 다섯 배로 올랐으니 주주들도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하지만 애플의 ‘현금 집착’은 다소 유별난 점이 있다는 게 월가의 평가다. 이를 두고 과거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CEO)가 회사에서 쫓겨난 뒤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던 경험에 따른 후유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1억5000만 달러를 투자받는, 사실상 ‘굴욕’을 겪기도 했다. 잡스는 2월 현금을 배당 등에 쓰는 것보다는 ‘과감한 투자’에 대비해 보유하는 걸 선호한다고 밝혔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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