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 뒤엔 군대가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군 복무 시절 나는 고문관 중에서도 '상'고문관이었다." 주철환(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교수의 고백이다. 그는 자신의 지난 시절의 흉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고문관론'을 폈다.

그런가하면 지난 8월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의 군 시절 회고담은 웃음을 머금게한다. "부대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군예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오늘의 이주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이어 "육군 이기자부대에 군 위문단이 왔을때 군예대 선임하사에게 '쇼판에 좀 있었다'는 거짓말이 금세 들통나 곧바로 취사병으로 전락했다 "고 썼다.

이주일씨는 작고하기 넉달 전에 책에 실린 원고를 육필로 작성했다고 한다. 활기찼던 그 시절을 회고하던 병석의 이씨 모습에서 "왕년에…"로 시작하는 군대 이야기는 군대뿐 아닌, '젊음'을 곱씹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송인 이상벽, 연극인 유인촌, 탤런트 최불암, 산악인 엄홍길, 변호사강신옥 , 전하진 네띠앙 대표 등 50명의 유명인이 쓴 군대 경험담이 묶여 나왔다. 『성공하고 싶다면 군대에 가라』(중앙 M&B)는 국방일보에 1년간 연재됐던 기획물. 각 분야에서 성공한 인사들이 자신의 인생에 군생활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이 됐는지를 밝히는 코너였다.

지난 14일 가진 출판 기념회에는 군 복무중인 개그맨 서경석, 탤런트 이훈씨가 사회를 맡고 필자들이 초대됐다. 필자 가운데 연예인이 많고, 전·현직 장성들도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별들의 잔치'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광주보병학교에 복무했던 성악가 임웅균씨는 '희망의 나라로'를 기꺼이 불렀으며, 비무장지대 장교로 근무하던 한명희 서울시립대 음악학과 교수는 순찰하다 본 돌무덤에서 착상이 떠올라 가곡 '비목'을 작사했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책 속의 군대 이야기는 이렇게 다시 이어진다. "군복무를 하려면 몸무게가 적어도 50kg은 돼야하는데 49kg밖에 안됐습니다. 군의관에게 몸무게를 올려달라고 애걸복걸했더니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며 껄껄 웃더군요."(손봉호 서울대교수) "1980년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화랑부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지상과제는 신춘문예 응모였다. 군대를 인생의 블랙홀로 삼고 싶지 않았다."(소설가 고원정)

탤런트 최불암씨의 '자장가 사건'은 병영생활의 설움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선임병이 나보고 당직을 대신 서라고 한 뒤 자기가 잠들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했다. 홀어머니께도 불러 드리지 못했던 자장가 아닌가. 노래를 부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이밖에 책 속에는 훈련 도중 얼차려를 받다 품 속에 간직하던 건빵 세봉지를 떨어뜨려 위기에 몰렸다는 탤런트 유동근씨, 방황하던 청년 시절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야구 해설가 하일성씨 등이 등장한다.

저자들은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군대가 큰 영향을 마쳤다"며 이구동성으로 밝히고 있다. 타인에 대한 이해,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법 등을 군대가 아니었다면 얻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책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담겨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대기 수여 장면, 추억의 페치카(난방장치) 등과 한번도 공개가 되지 않았던 미스 여군 선발대회 수영복 심사 장면의 사진도 실려 있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