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대화 많이 할수록 마음의 病 안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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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란 사실을 알게 된 이발사. 비밀 누설은 생명을 담보로 한 일이기에 혼자만 삭이다 급기야 속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게 됐다. 하루는 도저히 참다 못해 들판에 나가 구덩이를 파고 맘껏 사실을 외친 후부터 심신의 평정을 되찾는다.

예로부터 알려진 이 이야기는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생을 살다보면 속상한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마음맞는 사람과 허심탄회하게 문제점을 털어놓고 의논해 최선책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성격상, 혹은 사회적 상황이 이를 허용치 않으면 병이 된다.

한국 여성의 한을 담고 있다는 '화병'의 원인은 화가 나는 현실을 혼자 참고 삭이면서 생기는 병이다. 이 병은 1996년 세계 정신과 학회에서 질병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처음엔 '자다가도 열이 치받아 벌떡 일어난다''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꽉 막힌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한다. 이 상태에서 계속 감정을 억누르고 살게 되면 점차 우울증이 나타난다. 검사상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다. 다행히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젊은층에선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발전해 생기는 '신체화(身體化)장애'역시 벙어리 냉가슴 앓다 생기는 병이라 할 수 있다.

정신과에선 좋은 조언을 하기보다 환자의 하소연을 도중에 방해하지 않고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자세로 잘 들어주는 의사를 명의로 꼽는다.

실제로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치료법 중 하나가 환자로 하여금 속시원히 고민사항을 털어놓게 하는 환기(換氣)요법(ventilation therapy)이다. 종교적인 '고해성사'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데 혼자 꾹 참고 지내던 힘든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치료효과가 있다. 환자들은 '말이라도 시원하게 하니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듯 후련하다'는 말을 한다.

굳이 정신과를 찾지 않아도 좋다. 속상한 일이나 문제점이 있을 땐 혼자 해결하기보다 마음에 맞는 가족·친지·벗을 찾아 대화를 많이 하자. 그것이야말로 건강장수의 지름길이다.

황세희 전문기자·의사
s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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