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작자' 두 소설가의 인사동 夜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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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8일 개봉한 '밀애'(감독 변영주)는 소설가 전경린(40·사진(右))씨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했다. 올해 상반기의 히트작인 '결혼은, 미친짓이다'(감독 유하)는 소설가 이만교(35·사진(左))씨의 동명(同名)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여성의 현실과 욕망의 세계를 세상에 보여주며 자신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구축한 전씨와 앞서가는 젊은 작가 이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소설이 영화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이만교='결혼은, 미친짓이다'는 세 번 봤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다. 내 작품에 충실했지만 너무 많이 생략됐더라. 두번째 볼 땐 이건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장르는 멜로다, 내 것과는 다르다, 감독 것이다하는 느낌.

전경린=시사회 때 한 번 봤다. 내가 가장 엉터리 관객 이 아니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파김치가 됐다. 왜 그 대목을 생략했을까, 저 장면에서 감독의 의도는 뭐였을까 하는 생각에…. 수십 페이지 분량을 몇 컷의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는 감탄스럽더라. 기대는 크게 안 했다.

이=기대라…. 중요한 건 감독이 쥐고 있다.

전=장르간에 호환됐을 때 풍요롭기를 바랐는데 지나치게 앙상하지 않나.

이=내 작품의 주제는 이런 거다. 자본이 만드는 이미지에 사람들이 길들여지는 것을 비판하기. 진짜 욕망과 만들어진 욕망의 구분 말이다. 영화에선 이게 다 빠졌다. 장르를 따라갈 수밖에. 관객도 멜로로만 여기더라. "여자는 남자를 진짜로 사랑한 거냐"식의 얘기들. 영화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파급력이 크다. 다양한 생각의 시발점이 될 수는 있다.

전=내 소설에선 배경이 중요한 복선 역할을 한다. 배경이 불륜의 운명을 말한다. 그런데 감독은 숙고 끝에 배제하기로 했다더라. 그걸 따르면 프랑스 문예영화처럼 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상업적 목적 달성은 어려울 거다. 편집 과정서 많이 잘렸다니 이해된다.

이=맞다. 영화의 현실을 알면 다 이해가 되긴 한다.

전=문체의 침투력과 장악력은 화면으로 전달되기어렵다.

이=장편소설의 영화화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단편은 감독이 살을 붙이기가 쉬울텐데. 게다가 스타 시스템을 봐라. 원하는 배우를 고르기가 어렵더라. 특히 여자 배우의 경우.

전=같이 본 여자 작가들이 마지막 정사 장면의 남자 배우 연기가 탁월하다고 하더라.

이=인터뷰 때 연예인 만나봤는데 연예인들은 작가를 엄청 꺼리는 것 같았다. 골치 아픈 사람 아닌가 하고.

전=결국 감독을 고려하게 된다. 계약 때 여성 감독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내 작품이 남자 감독 손에 맡겨졌으면 그렇고 그런 야한 영화가 됐을 수도 있겠다.

이=내 경우 유하 감독이 시인이어서인지 대사는 잘 정리했더라.

전='밀애'는 원작의 문어체가 그대로 대사가 됐다. 감독이 일부러 그랬다지만, 볼 때는 꽤 이상했다.

이=영화는 대중용이라 가볍게 보고 웃고 그러는거다. 그러니 많이 본다. 삶에 대한 문제 제기나 삶의 중요성을 묻는 일은 거의 없다. 그에 비하면 문학은 무한하지. 작가가 맘껏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으니까.

전=상상의 여지에서 영화가 문학을 따라올 수 없다.

이=불편하지만 각오하고 즐긴다면 소설이 훨씬 재미있다는 걸 알거다. 그런 향유층도 분명 있고. 외국의 경우도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훨씬 풍요롭지 않은가.

전='닥터 지바고'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예외다.

이=누벨바그의 창시자인 프랑스 감독 장 뤼크 고다르는 3류 소설에서 원작을 골라야 각색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 어떻든 '영화화 결정'이라고 선명히 찍힌 내 소설 광고를 보니 자괴감이 들었다. 영화의 마케팅 힘. 그에 비해 소설은…. 당신 소설도 요새 '밀애 원작소설'이란 광고띠가 붙어 팔리더라.

전=가끔 시나리오 써보겠냐는 제안을 받는다. 자존심 상하고 슬프고 그렇다.

이=그런데 판권료 얼마 받았나. 나는 2천만원 받았다. 이 중 7백만원은 출판사 몫이다. 에이전트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영화사가 볼 때 원작자는 밥이다.

전=정말 그렇다. 작가가 어떻게 다 신경 쓰겠나. 아, 판권료는 당신의 두 배다.

글=우상균 기자·사진=박종근 기자

hothea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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