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실적 공시 이랬다 저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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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상장·등록사들이 공시를 통해 발표한 실적을 번복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특히 수정 발표한 실적이 당초 내놓은 실적보다 나쁜 기업들도 적지 않아 실적을 믿고 투자할 경우 낭패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들은 업무상의 실수라고 주장하지만 증권시장에 대한 불신감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수정 실태=상장·등록기업들은 실적 공시 마감일인 지난 14일까지 1~9월 실적을 발표했다. 그런데 실적을 최초로 공시한 후 기존 실적 수치가 잘못됐다고 변경 공시를 한 기업이 속출했다. 거래소 시장에선 지난 14일 23개사, 15일 20개사가 실적 변경 공시를 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18일까지 변경공시를 낸 기업이 80여개나 됐다.

해태유통은 지난 14일 낮 12시29분 1~9월에 1백67억원의 순손실을 냈다고 공시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8시에 당기 순손실이 2백94억원이라고 고쳐 발표했다. 회사 관계자는 "해태백화점을 매각하면서 생긴 손실을 미처 반영하지 않아 생긴 실수"라고 해명했다.

코오롱은 지난 13일 오후 3시42분 분기보고서를 통해 1~9월 매출액이 9천4백10억원이라고 공시했다가 15일 오전에야 '오기로 인해 정정한다'며 매출액을 이전보다 1백73억원 줄어든 9천2백37억원으로 공시했다. 이 회사 주가는 14일 3.43% 올랐다. 코오롱 관계자는 "공시담당 직원이 분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수치를 잘못 입력했다"고 말했다. 또 "올해 매출액이 1조2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매출액 1백억~2백억원을 적게 발표한 게 주가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비티아이는 14일 오후 6시10분 당기 순손실 규모를 2억2천4백만원으로 발표했다가 15일 오전 당초 액수의 6배가 넘는 14억8백만원으로 공시했다. 회사 측은 "신입사원이 업무에 서툴러 빚어진 단순 실수"라고 주장했다.

반면 실제 실적보다 나쁘게 발표한 기업들도 있다. 이런 경우에도 해당기업들의 주가가 잘못된 실적 발표로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동신은 14일 오후 4백92억원의 세전 순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가 15일 오전 당기 순익이 4백92억원을 기록했다고 수정 공시했다.

증권거래소 최실근 상장공시부장은 "이번에 6백여개 상장사가 동시에 실적을 공시하다보니 일일이 실적 내용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어떻게 고쳐야 하나=기업들이 정정공시를 냈다고 섣부르게 제재를 할 수는 없다. 자칫 잘못된 공시정보를 고치려는 기업들의 의지마저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정공시가 실적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화증권 민상일 연구원은 "현재 정정공시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어 이런 실수가 반복되는 것 같다"며 "고의성이 짙은 기업들에 불이익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키움닷컴증권 정도영 연구원은 "상장·등록 기업들은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시 담당자 등 내부 인력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증권거래소 崔부장은 "앞으로 기업들이 실적과 관련해 정정공시를 할 때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재식 기자

angel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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