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추억 되살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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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평론가에서 만화박물관 자료담당으로, 만화가로, 그리고 이제 만화 출판사 대표로-.

도서출판 길찾기의 원종우(32)대표가 걸어온 길의 공통분모는 '만화'다.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가장 자신있는 것'으로 미래를 승부하고 싶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만화를 선택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친숙했어요. 이미지를 갖고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거든요."

1995년 만화비평을 시작한 그는 99년 부천만화정보센터에서 만화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의 실무를 맡았다. 또 2000년에는 부인 정경아씨와 함께 작업한 만화 『빠담 빠담』으로 문화관광부로부터 출판만화대상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만화시장이 어려우니까 좋은 기획이 있어도 책으로 나오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털어 집사람과 함께 회사를 차렸죠."

도서출판 길찾기에서 처음 펴낸 학습 만화 『만화로 읽는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문득 어릴 적 내가 좋아했던 만화를 복간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유성 선생님의 『로보트 킹』은 국산 SF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설정이 탄탄했고 작품 중간 중간에 개그가 삽입돼 무척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거든요."

하지만 더 이상 모험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낸 안전장치는 두 가지.

첫째는 딴지일보와 제휴를 해 네티즌들로부터 선주문을 받은 것이었다. 77년 『월간 우등생』에 연재됐던 『로보트 킹』을 추억하는 386세대는 의외로 많았고, 그들 중 7백90명은 2만4천원이라는 선주문 비용을 선뜻 내놨다.

두번째는 복간본의 질을 높이는 것. 원대표는 원고가 없어 책을 스캔받아야 했기 때문에 잔손이 많이 필요했다면서 "당시 검열을 통해 삭제된 부분도 작가가 일일이 다시 복원했다"고 말했다. 고급스런 검정색 하드커버에 종이도 모조지를 사용하고 이를 다시 은색 팩으로 감쌌다.

특히 DVD의 서플을 연상시키는, 작품 출연진 해설이나 작가 인터뷰 등을 담은 70여쪽의 '스페셜 북'은 단연 돋보이는 아이디어.

"단순한 만화책 복간본이라기보다는 추억의 상품을 드린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미리 주문해주신 분들에게는 작가의 사인까지 넣어드렸죠."

이번에 나온 것은 탄생편 3권. 앞으로 10권이 계속해서 출시된다. 『로보트 킹』이 복간됨에 따라 지난해 『철인 캉타우』(바다출판사)와 올해 『로보트 태권 V』(G&S)까지 포함해 '3대 토종 로봇만화'가 모두 복간됐다는 의미도 적지않다.

원대표는 방학기씨의 대하 무협만화 『바람의 파이터』 역시 10권의 양장본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로보트 킹』과 『바람의 파이터』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1천만원씩의 제작 지원금을 받았다.

"원고를 만화책으로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책이 잘못 만들어지면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잖아요."

그는 앞으로 부인과 함께 기획 중인 창작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서유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의 행보가 한국 만화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http://gckbook.com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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