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8300선서 교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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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미국 다우존스 지수와 일본 닛케이 225 지수가 거의 반세기 만에 다시 만났다.

다우 지수는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간) 8,398.49로 거래를 마쳤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이 숫자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열린 도쿄 증시(14일)에서 닛케이 지수가 8,303.39로 장을 마감하면서 증시 역사에 남을만한 극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최근 위로 향하던 다우와 밑으로 가던 닛케이가 서로 교차한 것이다.

<그래프 참조>

둘은 최근 거리를 바짝 좁혀 왔다. 지난해 9월과 올 2월에도 장중 한 때 만난 적이 있지만 거래가 끝났을 땐 다시 멀어져 있었다.

다우·닛케이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57년이었다. 당시 두 지수는 500선을 맴돌고 있었다.

두 지수의 만남은 암울한 세계 경제 및 증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일로 비춰지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4일 미국을 넘보는 부자 나라로 꼽혔던 일본 경제가 얼마나 힘든 진흙탕 길을 걷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전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두 지수가 다시 만나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89년 12월 닛케이가 38,915로 정점에 올랐을 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40,000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자신에 차 있었다. 세계 경제의 주역이었던 일본은 록펠러 센터나 페블비치 골프장 같은 '미국의 보물'을 사들였다. 미 자동차 회사들은 일본 업체들이 남긴 부스러기를 줍는데 만족해야 했다. 미국에선 '제2의 진주만 공격'이라는 말까지 돌았다.

그러나 이런 황금기는 90년대 들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닛케이는 75% 이상 폭락했다. 지금은 디플레이션과 엔-달러 환율 하락 등이 일본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미국이라고 사정이 낫지는 않다. 올 들어 경기침체 우려와 회계부정 파문 등이 겹치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꺾였다. 다우 지수는 연초보다 15%가량 빠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은 더 이상 지구촌 경제를 도울 위치에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선 거품이 빠지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두려움마저 일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45년 만에 만난 두 지수가 어느 쪽으로 발길을 뗄지에 전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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