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영書 찬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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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세계적으로 경영관련 서적의 붐을 몰고 왔던 톰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이 출간된 지 꼭 20년이 됐다.

그러나 요즘 미국 서점의 경영서적 코너에는 찬바람이 쌩쌩 돈다. 고전적인 경영서가 잘 안팔리는 것은 물론 장안의 지가를 올릴만한 이렇다할 새 책도 보이질 않는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지난 1999년 미국내 전체 책 판매액의 5.8%에 이르던 경영관련 서적이 2001년엔 4.2%로 쪼그라들었다고 한 조사기관의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올해는 그 비중이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으론 경영분야를 선도할 만 한 새로운 주제(big idea)가 출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90년대초엔 '리엔지니어링'이 붐을 이뤘다. 리엔지니어링과 관련된 책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물론이다. 그 후 2-3년마다 사람들을 열광시킨 경영의 새로운 조류들이 유행처럼 등장했다. '품질 향상(quality improvement)'이 그랬고, '가치 중시의 경영(value based management)'이 뒤를 이었다. 가장 최근의 예로는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이 한바탕 바람을 몰고 왔다. 그런데 (디지털)혁명의 열기가 가라앉고 난 다음 그만한 '대박 거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서적 전문가인 리처드 파인은 최근의 경영서 판매부진은 전반적인 경기부진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경기가 좋을 때는 주제와 상관없이(물론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업적을 합리화할만한 이론적 배경을 찾는다. 반면에 경기가 나쁠 때는 가뜩이나 실적이 부진한 판에 경영자들이 자신들의 실책과 능력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경영서를 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일련의 기업회계부정과 스캔들로 유명 경영인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이 잘 팔리지 않는 것도 전체적인 경영서 판매부진에 한 몫을 거들었다. 회고록 집필로 7백만달러를 받았던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회장의 경우 잇따른 구설수로 원고료만큼 책이 팔릴 지 의문이다. 출판계는 지난주 출간된 루 거스너 IBM회장의 자서전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역시 얼마나 팔릴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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