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식 前 현대상선 사장 LA 단독회견 "정몽헌회장 이상한 뭉칫돈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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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그룹의 4억달러 대북 지원 의혹을 풀 핵심인사로 지목받고 있는 김충식(57) 전 현대상선 사장은 "2000년 당시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이유없이 대출받으려는 것을 대표이사로서 완강히 거부했다"며 "서류에 자필 사인이 없고 직인만 찍혀 있는 것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지원한 4천억원은 정부가 갚아야 할 돈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金전사장은 9월 초 신병치료차 도미(渡美)해 두달 만인 지난 10일(현지시간) LA 남부지역 주택가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데니스)에서 점심을 먹다 본지 기자와 만나 이같이 밝혔다.

이는 현대상선 거액 대출금이 회사와 관련없는 제3자에 의해 서류가 조작된 채 서둘러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주목된다.

그는 산업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도록 누가 지시했고, 그 대출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지금도 양심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거리낄 게 없다"고 강조했다. 金전사장은 이후 본지 기자와 두 차례 더 만나 심경을 토로하는 과정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으로서는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라며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는 또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그룹의 생존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건뜻하면 현대상선에 '이상한 뭉칫돈'을 요구했다"며 "이를 거부하다가 끝내 사표까지 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산업은행 대출금이 북한으로 간 것으로 보느냐는 물음에는 즉답을 하지 않았다.

金전사장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가 하는 말이 정치적으로 한쪽에 이용될 것 같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 다른 의도는 없다"며 도피설을 일축했다.

미국 국적의 스티븐 리(한국명 이국한)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목 부위 물혹과 호흡기 질환을 치료받고 있다고 밝힌 그는 신병치료와 대통령선거가 끝나는 연말께 귀국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LA=김시래·유재민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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