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픈 박사과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Y대 박사과정에 있는 朴모(31)씨는 얼마 전까지 수능을 앞둔 고교 수험생들에게 사회탐구 과목 단기 쪽집게 과외를 했다. 석달 전에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1주일에 세 번씩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강사 일을 그만 둔 뒤 찾은 일거리였다.

그가 학원·과외 교사로 나선 이유는 한달 50여만원의 시간강사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생계 유지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1주일에 6시간씩 수도권에 있는 2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朴씨는 요즘 다시 학원강사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수능 시험이 끝나 그나마 과외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님은 돈 벌 시간에 연구를 하라고 말씀하시지만 대부분의 학생이 학비 조달을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각종 일거리를 찾는다"면서 "학원강사 하겠다는 박사들이 많아져서인지 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과 관련이 적은 학과의 학생들은 학원 일거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논술 과외를 알아봤지만 철학과·국문과 박사과정 학생들을 선호하더라"면서 "다음 학기에 내야 할 3백만원 가까운 학비를 또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종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공부하고 있다는 외국 유학생들의 소식은 朴씨를 더욱 힘빠지게 한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가 각종 장학금을 합쳐 1년에 1억원을 받고 있다면서 저도 지금이라도 해외유학을 떠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

그는 "돈 걱정이 없기 때문에 적응기간을 빼고도 차라리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 게 시간이 적게 걸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면서 "일단 박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朴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수신문이 지난해 4월 대학 시간강사·연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간 근로소득이 1천1백30만원으로 한달 평균 1백만원이 안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학 강사의 연간 소득은 1천30만원으로 월 90만원도 되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