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우리 편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물고문의 망령이 못내 검찰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다못해 씻김굿이라도 해서 그 망령을 달래 보내야 우리 검찰이 거듭날 수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조폭들이 영화와 TV를 주름잡고 있다. 마치 조폭이 '좋은 나라'이고 검찰이 '나쁜 나라'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누가 뭐라 해도 검찰이 우리 선량한 시민의 편이다.

다행히 범인들이 잡히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무차별 저격의 공포 때문에 시민들이 바깥출입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어디나 대낮에도 걷기 두려운 지역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계적인 대도시 치고 서울만큼 안전한 곳도 거의 없다. 칼이나 총보다 몇 배 더 무서운 자동차라는 흉기가 호시탐탐 우리의 목숨을 노리긴 하지만 서울의 밤거리가 시카고의 밤거리 같지 않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흉악범을 다스리는 것만이 검찰의 할 일은 아니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살면서도 이 도시·이 나라가 규환지옥으로 전락하지 않는 것은 상당 부분 든든한 우리 검찰의 덕이다. 내가 15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결심할 때도 보다 안전한 곳에서 자식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그 동기 중의 하나였다. 툭하면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애꿎은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그런 학교에 내 아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우리 검찰이 최근 부쩍 심각해진 조폭 사태를 바로잡으려던 과정에서 벌어졌다. 수사 과정의 인권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시절 두어 번 수사기관에 불려갔던 경험을 돌이켜봐도 진작에 개선돼야 했던 구시대의 유물이다. 우리나라 검찰에만 있는 문제도 아니다. 선진국들의 검찰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문제다. 미국에서는 종종 인종차별의 문제와 묘하게 뒤섞여 훨씬 더 추악하다. 범법자의 인권도 철저히 보호해야 성숙한 민주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

수사과정의 인권문제는 하루아침에 씻은 듯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두고두고 함께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 검찰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 검찰의 멍에를 벗어야 한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확립하기만 하면 현재 안고 있는 다른 크고 작은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 얼마 전 청소년 보호에 더 많은 힘을 쏟기 위해 표표히 검찰을 떠난 강지원 전 검사도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현행 정치체제에서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란 그리 쉽지 않다. 대통령이 홀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임면권을 쥐고 있는 한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검찰총장의 청문회는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청문회를 통해 정치권에 맞서 꿋꿋하게 국민의 권익을 보호해줄 인물을 찾을 수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저 아무런 하자가 없는 무색무취의 인물이 선택되고 말 것 같은 우려가 앞선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아예 미국처럼 지방검사(District Attorney)를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검찰의 중립성은 자연스럽게 확보될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더라도 지청의 장들을 비롯해 가능하면 검찰총장도 직선제로 뽑는다면 진정 국민의 편에 서 있을 검찰을 기대할 수 있다.

우리 검찰은 지금 역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 줘야 한다. 국민은 국민대로 그들이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준엄한 충고는 필요하겠지만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내뱉는 질타는 피해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마저 반납한 채 밤낮없이 범죄와 싸워온 대부분의 훌륭한 검사들에게 우리 모두 우선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들 스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나는 우리 검찰이 조만간 우리의 당당한 수호신으로 분연히 일어서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