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 쉬어가는 산골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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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제목부터 뭔가를 '후' 날려버릴 듯 가벼움의 뉘앙스가 전해지는 영화다. 그렇다. 이 영화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계 바늘에 매여 번잡하고 참을 수 없이 둔중해져 버린 우리의 존재로부터 짐을 내려준다. 그 해답은 삶이 느릿느릿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 속력이 빨라질수록 물질도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이치처럼, 현대인은 속도전에 말려들면서 그 하중을 견디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누구도 속력을 낼 수 없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7백㎞ 넘게 떨어진 벽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모래 언덕들과 그 허리를 구비구비 감고 도는 커브길에서 자동차는 액셀러이터 대신 수시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테헤란에서 줄곧 황토길을 달려온 우리의 주인공들. 차도 사람도 마침내 열을 받고 두 손 들어 버린다. 오래 전 터전을 잡고 사는 그 곳 사람들에게 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안쓰럽고 우스꽝스럽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년)'올리브 나무 사이로'(94년)'체리 향기'(96년) 등 소박한 형식에서 영화의 깊이를 끌어내는 '마술'을 보여온 이란의 명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환갑줄에 들어선 그가 99년에 만든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들을 수렴한 듯한 느낌을 준다.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친 사람살이('내 친구…'), 남녀의 사랑('올리브 나무 사이로'), 죽음('체리향기')의 테마가 이번 영화에 모두 녹아 있으면서 또 그것들을 넘어서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들을 수 있을(耳順)만큼 살아낸 그가 인간의 탄생과 죽음, 삶의 희열과 신산함에 대해 노래하는 것이다.

백살 먹은 노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온 기자들.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던 노파는 되레 건강을 회복하고,'아직 안 됐느냐'며 몰아대는 신문사 간부의 질책(?)에 초조해진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 동안 이 성마른 도시인은 촌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시간의 질서에 감염되고 그 결과 시인의 눈과 같은 통찰을 얻게 된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못하겠다. 언어를 넘어서는 시적인 영상과 이란 시인 포루그의 시에서 끌어왔다는 대사들의 오묘한 맛을 전달할 재간이 없다. 존재의 심연 한 곳을 건드릴 것이 분명한 이 영화를 섣부르고 제한적인 몇 마디 언어로 훼손하고 싶지 않다. 이 영화는 물한방물 먹지 않은 스펀지 상태에서 체험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단지 착하기만 한 영화, 그래서 내적인 침작과 마음의 다스림만 있다면 삶의 무게와 고통을 휘발시킬 수 있다고 권하는, 얼치기 명상록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점은 꼭 짚고 싶다.

"사장의 사촌이 죽었어요. 장례식에서 한 여인이 비통함에 못이겨 거의 혼절할 지경으로 울더니 결국 칼로 자기 얼굴에 자해를 했지요. 아름다운 이야기라구요? 천만에요. 여인의 남편은 사장의 회사에 근무했어요. 남편이 일자리를 잃을까봐 사장에게 잘 보이려고 그랬던 거지요." '느림의 철학'이란 음풍농월(吟風弄月)과는 거리가 멀다. 구곡간장(九曲肝腸), 삶을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시하는 것이다. 무구하고 낙천적인 얼굴에서도 고통의 흔적을 읽어내는 감독의 시선이야말로 키아로스타미를 우리 시대의 '영화 시인'으로 만드는 힘이다. 22일 개봉. 전체 관람가.

이영기 기자 ley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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