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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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영화나 드라마의 관람 연령을 구분하는 기준으로도 자주 사용되는 '등급'은 원래 별의 밝기를 표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등급(magnitude)을 고안해낸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히파르코스다.

그는 BC 2세기께 하늘에 떠있는 별들의 밝기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낸 후 그때까지 관측된 1천80개의 별을 밝기를 기준으로 6등급으로 나누면서 등급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당시 그는 가장 밝은 20여개의 별을 1등급, 육안으로 겨우 식별이 가능한 별을 6등급으로 나누는 식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히파르코스는 단 한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아 이런 내용은 AD 1백40년께 프톨레마이오스가 그의 저서 『알마게스트』에 기록한 후에야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반인들도 다른 광원(光源)의 밝기는 촉광을 기준으로 구분했지만 별만은 등급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언제부터 이런 등급이 사용됐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영조 46년(1770년)에 편찬된 『동국문헌비고』의 상위고(象緯考) 편에 별의 밝기를 등급으로 구분해놓은 내용이 나온다.

특히 여기에는 "1등성은 2등성의 2.43배, 2등성은 3등성의 2.55배, 5등성은 6등성의 1.33배"라는 별들의 밝기 차, 즉 광도비(光度比)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서양에서도 별들 간의 광도비에 대한 연구와 언급은 19세기 중엽 영국의 J 허셜에 의해 가능했던 것을 감안하면 『동국문헌비고』의 광도비에 대한 언급은 허셜의 연구보다 5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있던 조선 천문학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이런 등급이 보다 발달되고 분화돼 별의 등급을 천체까지의 기준거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실시등급(實視等級)과 절대등급으로 나누고 빛의 파장역에 따라 안시등급(眼視等級)·사진등급·광전등급 등으로도 나눈다. 또 등급의 사용범위도 점점 넓어져 영화나 게임 등의 연령등급, 서비스의 수준과 가격을 구분하는 개념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우리 주변에는 스스로를 빛나는 별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그 곁에서 별빛이라도 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안달하는 모습이 보인다. 원래 1등급 별과 6등급 별의 밝기의 차는 1백배나 된다. 스스로를 별이라고 주장하는 자들 중 누가 1등급이고 누가 6등급인지 그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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