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짓눌려' 초등5년생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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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초등학교 5학년생이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같은 반 여자친구(11)와 자살을 암시하는 내용의 대화를 나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어린이의 일기장에는 "내가 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어른이 일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써가며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글이 남겨져 있었다.

지난 8일 오전 9시쯤 충남 천안시 모 아파트에 사는 정모(11)군이 집안 베란다 가스배관에 끈으로 목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정군의 아버지(40·공무원)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아파트는 문이 안으로 잠긴 채 정군 혼자 있었고, 맞벌이하는 정군의 부모는 직장에서 야근을 하고 이날 아침 귀가한 상태였다.

경찰조사 결과 정군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집에서 같은 반 여자친구와 인터넷 채팅을 하면서 "나 지금 죽을 수도 있다. 자살 도구를 준비해놨다. 바이바이…"라며 자살을 예고하기도 했다. 정군은 당시 '불행'이라는 ID를 사용했다.

외동아들인 정군은 지난달 29일자 일기에서 '답답한 세상-답답한 인생'이란 제목 아래 "죽고 싶을 때가 많다. 어른인 아빠는 (이틀 동안) 20시간 일하고 28시간 쉬는데, 어린이인 나는 27시간30분 공부하고 20시간30분을 쉰다. 왜 어른보다 어린이가 자유시간이 적은지 이해할 수 없다"고 썼다.

정군은 또 "숙제가 태산 같다.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안올라 고민스럽다. 그만 다니고 싶다. …바다 속의 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적었다.

정군의 주변 사람들은 "정군은 방과 후 속셈·영어 학원 등을 다니느라 밤늦게 귀가했다"며 "평소 친구들에게도 학원 숙제 등이 부담스럽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삼성서울병원 홍성도(소아청소년정신과)교수는 "요즘 어린이들은 공부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간단한 농담이나 낙서에도 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안=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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