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이 비켜가는 팀'극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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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한국시리즈 도전사는 실패와 좌절로 얼룩져 있다.

원년인 1982년 OB(현 두산)에 1승1무4패로 패한 것을 비롯, 지난해까지 일곱차례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서 단 한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특히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해 일찌감치 한국시리즈행을 결정지었던 84년엔 져주기 경기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약체' 롯데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시리즈에선 롯데 투수 최동원에게 4패를 당하는 수모 끝에 3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를 본떠 '달구벌의 저주'란 말도 이때 나왔다.

삼성은 86년, 87년에 이어 93년까지 김응룡 감독이 이끄는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어 세차례 모두 패했고, 90년엔 LG에 4전 전패의 치욕을 당했다.

93년에는 4차전까지 해태에 2승1무1패로 앞서 첫 우승의 꿈에 부풀었지만 잠실 3연전을 모두 내주며 다시 우승 목전에서 물러났다.

절치부심하던 삼성은 99년 임창용과 김현욱·노장진 등을 영입해 투수진을 보강했다.

이것도 모자라 지난해엔 '우승 제조기'로 불리던 해태의 김응룡 감독을 '모셔'왔고, 용병투수 갈베스와 롯데의 간판타자 마해영까지 스카우트해 우승의 꿈을 불태웠다.

그러나 김응룡 감독도 삼성의 우승 징크스를 피해가진 못했다. 지난해 정규시즌에서는 독주 끝에 1위에 올랐지만 정작 한국시리즈에 들어가서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진다고 평가됐던 두산에 2승4패로 졌다. 일곱번째 실패였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향한 삼성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삼성은 지난해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하와이로 날아가 뼈를 깎는 강훈련을 거듭했다.

김응룡 감독은 왼손투수 보강이 절실하다고 여기고 멕시코에 20여일간 머물며 선발투수 엘비라를 발굴, 시즌 도중 매트 루크(외야수)와 교체했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삼성은 올시즌 기아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다 막판 15연승을 거두며 페넌트레이스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그리고 현대와 기아를 물리치고 올라온 페넌트레이스 4위 LG와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다. 1위와 4위의 싸움이었지만 삼성은 쉽게 이기지 못했다.

한국시리즈에만 들어가면 힘이 빠지는 것 같은 삼성은 추위 속에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느라 체력이 떨어진 LG와도 접전을 펼쳤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삼성은 결국 21시즌 만에 지긋지긋한 우승 징크스를 떨치고 '최강 삼성'의 꿈을 이뤄냈다.

정제원 기자

newspoe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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