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투혼이 부른 LG '신바람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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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 LG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대구구장을 휘감은 챔피언 삼성의 환호성을 뒤로 하고 조용히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조연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뒷모습에 패자의 쓸쓸함은 없었다. 그들은 '신바람 야구'의 저력을 갖춘 '작은 거인'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특유의 절제된 카리스마로 중위권으로 평가받던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는 패장이었지만 진정한 '보스'였다. '컴퓨터 야구'로 일컬어지는 그의 야구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최선을 다한 승부로 '패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전형을 보여줬다.

삼성에서 퇴출된 마르티네스가 LG의 4번타자가 되고, LG의 4번을 맡았던 양준혁이 삼성으로 옮겨간 형국이었지만 LG는 끝까지 삼성과 명승부를 펼쳤다.

김 감독은 "마지막까지 멋진 경기를 펼쳐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후회는 없다. 우리 능력의 1백%를 넘어 2백%를 발휘한 선수들이 고맙다. 승부에선 졌지만 경기는 이겼다고 생각한다"며 흐뭇해했다.

선수생명 자체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왼쪽 고관절 부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출전을 감행한 김재현(사진)의 투혼은 LG를 상징하는 힘이었다. 이달 중 미국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인 그에게 보낸 동료들의 우정과 팬들의 사랑은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동료들은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 동안 모자에 김재현의 등번호 '7'을 그려넣었고, 팬들은 '그대의 쾌유를 위해 승리한다'는 격문을 써붙였다.

이번 시리즈에서 김재현은 '캐넌 히터'의 장쾌한 스윙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의 투혼은 6차전 내내 팀을 지탱하는 '정신'이 됐다. 평소보다 방망이를 5㎝쯤 짧게 잡고 한달여간 라인업에서 빠졌던 공백을 극복했고 6차전에서도 대타로 나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다.

김재현이 보여준 열정과 투혼은 추위 속에 치러진 이번 포스트시즌을 훈훈히 덥혀준 감동의 스토리였다. 그리고 동료들의 우정은 LG가 '나'가 아닌 '우리'라는 끈끈한 팀워크로 뭉친 조직으로 거듭나게 해준 발판이 됐다.

대구=김종문 기자

j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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